1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종각역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찬·반 집회
난민 둘러싼 한국 사회 논쟁 고스란히 압축
“국적·종교·언어 다르단 이유로 차별 안돼”
“예비 테러리스트 난민보다 국민이 먼저”
1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가랑비 내리는 가을 하늘 아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난민과 함께하는’ 이들과 ‘난민에 반대하는’ 이들이 동시에 집회를 열었다. 양쪽은 한때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민인권이 곧 국민인권’, ‘난민보다 국민이 먼저’를 외치며 대치하기도 했다. ‘난민 수용’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첨예한 논쟁이 서울 도심에서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난민인권센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아시아의 친구들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한국 사회의 ‘난민 혐오’에 맞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반면 바로 건너편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는 난민대책 국민행동이 여섯번째 난민반대 집회를 열어 ‘가짜 난민’, ‘불법체류자’ 등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난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정부가 난민혐오를 부추기는 일부의 목소리에 편승해 난민협약과 난민법에 규정된 난민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상에 오른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부는 그동안 국가와 종교,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난민을 혐오하는 세력들 뒤에서 침묵하는 비겁한 태도를 취해 왔다”면서 “(정부가) 더이상 침묵하지 말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난민 문제에 대해 올바른 태도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김민영 간사도 “갈 곳 없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여론이 난민 안전을 위협할 명분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단체·성소수자단체 등 한국사회 내 ‘사회적 소수자’들도 난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노동자연대의 이정원 활동가는 “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국민 보호도 없다”면서 “노동자연대도 난민혐오에 맞서 연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빛 손현수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이아무개(26)씨는 “난민 인권은 우리 사회 내 가장 취약한 지점에 놓은 소수자의 인권이고, 이는 곧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도 직결되어 있다”면서 “성소수자로서 난민 인권에 연대하는 것은 내 자신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집트·시리아·에티오피아 등에서 온 난민신청자들 다수도 직접 집회에 참가해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게 됐다는 압둘라(가명·26)씨는 “우리는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한국에 왔다”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법을 어기고 우리를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서 우리를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난민대책 국민행동이 난민 반대 집회를 열었다.
반면 난민반대 집회에서는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최근 23명의 예멘인들이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얻은 것에 대해 “10대 청소년 등에게는 인도적 체류가 쉽게 허가되는 것을 악용해 알카에다 등이 미성년자를 자살테러 특공대로 양성하고 있다”며 “미성년자와 임산부라는 이유로 돌려보낼 수 없다면 외국인보호소에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난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난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바로 도로 건너편에서 ‘난민반대 집회’를 진행하던 ‘난민대책국민행동’ 쪽이 난민찬성 집회 인근을 행진하면서 잠시 날카로운 대치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짜난민 OUT’이라는 손팻말을 든 난민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찬성 집회 쪽을 향해 “난민보다 국민이 먼저다”를 외쳤고, 난민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난민 혐오 반대한다”를 외치며 이에 맞섰다. 양쪽의 대치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분간 이어졌으나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28일간 단식농성을 이어가다 지난 13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방문을 계기로 농성을 중단한 자이드 압델레만(35) 등 이집트인 단식 농성자 3명도 이날 집회 현장을 찾았다. 바로 코 앞에서 ‘난민 반대 집회’를 목격한 그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압델레만은 “나는 그들이 집회를 열어서 목소리를 낼 권리를 존중한다”면서도 “테러리즘은 누군가를 자신과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그들과 우리들 중에 테러리즘에 더 가까운 것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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