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24 15:21
수정 : 2018.07.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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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이 21일 ‘전력공급 총력대응’ 보도자료를 내며 함께 배포한 정재훈 사장의 한울2호기 시찰 사진. 한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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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동 일정 4월에 이미 확정
이번 폭염과는 관계 없는데도…
한수원 “피크때 총력대응” 발표
예정과 달리 투입한 것처럼 읽혀
‘허둥지둥 재가동’ 보도 잇따라
한수원 “일정 조정 아니다” 해명
업계선 “새 경영진의 무리수”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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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이 21일 ‘전력공급 총력대응’ 보도자료를 내며 함께 배포한 정재훈 사장의 한울2호기 시찰 사진. 한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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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지속되자 허둥지둥 원자력발전소 5기를 재가동한다.’
지난 21일부터 나흘째 “탈원전을 표방한 정부가 전력수급이 불안해지자 원전 5기를 추가 투입하는 등 결국 원전에 다시 기대고 있다”고 꼬집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런 언론 보도를 전제로 “탈원전 방침을 재고하거나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원전 가동 상황은 이번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계획된 7∼8월 원전 가동 및 정비 일정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일부는 ‘오보’에 가깝다. 빌미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제공했다.
일부 언론이 지목한 원전 5기는 경북 울진의 한울1·2·4호기, 전남 영광의 한빛 1·3호기다. 멈춰 서 있던 한울 4호기가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21일 재가동에 들어갔고, 마찬가지로 정지 상태인 한빛3호기와 한울2호기는 최대 전력 수요가 최고점(피크)을 찍을 것으로 보이는 8월 2∼3주 전에 재가동되도록 한국수력원자력이 정비에 속도를 낸다고 보도했다. 또 한빛1호기와 한울1호기도 피크 때 가동이 가능하도록 정비 돌입 시점이 각각 8월 13일에서 18일로, 8월 15일에서 29일로 늦춰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원전들의 정비·재가동 일정은 이번 폭염과 관련이 없다. 탈원전하고는 더욱 무관하다. 수십 년째 똑같이 진행돼 온 15∼18개월 단위의 ‘계획예방정비’ 일정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우선 21일 재가동된 한울 4호기는 지난 5월 18일부터 계획예방정비를 받았다. 정비 돌입 당시 한수원은 “약 65일간 법에 따른 검사 등을 한다”고 밝혔다. 재가동된 21일은 정비 시작일에서 딱 65일이 되는 날이다. 계획대로 정비를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아울러 한빛3호기는 지난 5월 11일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7월 말 정비를 완료하는 게 애초 목표였다. 한울2호기는 지난해 11월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무려 168일이나 정비를 받고 재가동됐지만, 지난 12일 설비 이상으로 원자로가 자동 정지해 다시 정비를 받고 있다. 한빛1호기와 한울1호기 계획예방정비가 6∼12일가량 뒤로 밀린 것은 지난 4월에 결정됐다.
원전의 계획예방정비 일정은 예상치 못한 폭염과 같은 변수가 발생해도 다급하게 조정하기 어렵다. 계획예방정비는 원전의 연료를 전부 빼내고 원자로를 멈춰 세운 뒤 설비 전반을 점검하는 대규모 작업이다. 재가동을 급히 하고 싶어도 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재가동 뒤 100% 출력에 도달하려면 3일가량의 시일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한수원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총 24개의 원전 계획예방정비 시점을 1년간 균등하게 분배한 1차 계획을 세운다. 그 뒤 하계 전력 수요 대응을 준비하는 4월쯤이 가운데 일부의 일정을 조정한다.
그런데도 5개 원전 정비·재가동 일정이 ‘탈원전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로 둔갑한 것은, 한수원이 22일 느닷없이 낸 보도자료 때문이다. 한수원은 이날 오전 9시께 ‘전력공급 총력대응’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한빛3호기, 한울2호기 등 2개 원전을 전력 피크 기간 이전에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한빛1호기와 한울1호기 계획예방정비 착수 시기는 피크 시점 뒤로 조정키로 했다”, “이를 통해 전력 피크 기간 총 5개 원전을 통해 500만㎾의 추가 전력공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전력수급이 빠듯해 보이니 멈춰있는 원전 5기를 신속히 추가 투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준 것이다.
혼선이 일자, 한수원은 이틀에 걸쳐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한수원은 당일 오후 4시, 23 오후 1시 등 두 번에 걸쳐 “한울1호기와 한빛1호기 정비 시점은 지난 4월에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한빛3호기와 한울2호기는 원안위 재가동 승인을 받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이 최선을 다해 정비겠다는 뜻이었는데 많은 언론이 오해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한수원이 8월 전 정비 마무리를 목표로 할 수는 있지만, 재가동 승인은 원안위가 한다”며 “원안위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안전이 확인된 원전만 재가동을 승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 실수가 아니라, 정재훈 사장이 키를 쥔 한수원의 의욕이 빚은 혼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수원 보도자료는 누가 봐도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부랴부랴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처럼 읽힌다”며 “이런 오보성 기사가 쏟아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폭염 때문에 (원전 정비 일정을) 조정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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