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중요한 점은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가 부동산 강사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무리한 요구라면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부동산 강사는 프로고 정부는 아마추어다. 지난 10월23일과 30일에 방송된 문화방송 시사프로그램 <피디(PD)수첩>의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2부작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피디수첩’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부동산 투기 세력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 1부에 대해선 “현 정부를 보호하고 스타 부동산 강사를 집값을 올린 주범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들이 나왔지만, 2부는 부동산 정책의 허점에 초점을 맞춰 현 정부의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균형을 맞추었다. 시청자들마다 나름의 판단을 내렸겠지만,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은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국회의원의 41.5%가 두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거나 보수 언론이 ‘세금폭탄’ 운운하면서 강력한 투기 대책에 대한 저항을 선동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나는 좀 엉뚱하게도 ‘시장’에 대한 우리의 이중기준과 위선을 떠올렸다. ‘신격화된 시장’, ‘무한경쟁의 시장논리’, ‘잔인한 시장논리’ 등과 같은 표현들이 시사하듯이, 진보적인 사람들은 시장을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당연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국가가 관리해온 것들을 모두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내맡기자는 것이니 어찌 시장을 곱게 볼 수 있겠는가. 좋다. 시장을 ‘적’이라고 하자. 하지만 영국의 보수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남긴 이 말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와 싸우는 사람들은 우리의 정신을 강하게 해주고 우리의 기술을 연마시켜 준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돕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당연히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걸 전제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손자병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건 만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는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람에 대해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만 깊이 알려고 한다. 개인이 그러는 거야 당연하지만, 정부 공직자들마저 그런 경향이 농후하다. 사회악으로 간주되는 현상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라면 그 사회악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부동산 투기와 투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만큼 ‘미친 아파트값’에 일조한 가담자들의 행위를 사회악으로 보긴 어렵다. 투기라 한들 법대로 했다면 그런 허점을 방치한 정부를 탓하는 게 옳다. 중요한 점은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가 부동산 강사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무리한 요구라면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부동산 강사는 프로고 정부는 아마추어다. 몇몇 프로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이 오히려 투기를 키울 수 있다며 강한 이의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이런 고언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마저 없는 아마추어였다. 어떤 정책이건 시장에 대한 반감에 휩싸인 나머지 해당 시장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당위로만 밀어붙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에서 진보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시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일에만 너무 열을 올린다. 시장을 통째로 기득권 질서에 헌납하고 국가와 공공영역으로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사적 삶에서도 그렇게 산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시장을 깔봐선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금방 얻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사적 삶은 시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국회의원도 자유한국당 61명, 민주당 40명으로 별 차이 없다. 한달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청와대와 행정부처의 1급 이상 국가공무원, 그 관할기관 부서장 등 총 639명의 주택소유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이는 전체의 47%, 서울 강남3구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33%나 된다. 강남 집 보유자는 국세청 80%, 공정위 75%, 금융위 69%, 기재부 54%, 한국은행 50% 등 부동산정책 유관 부처의 비율이 높다.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사적 삶에서 발휘하는 이런 탁월한 시장 감각을 공적 정책에서도 발휘해 제발 성공 확률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칼럼 |
[강준만 칼럼] 시장에 대한 무지와 위선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중요한 점은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가 부동산 강사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무리한 요구라면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부동산 강사는 프로고 정부는 아마추어다. 지난 10월23일과 30일에 방송된 문화방송 시사프로그램 <피디(PD)수첩>의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2부작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피디수첩’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부동산 투기 세력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 1부에 대해선 “현 정부를 보호하고 스타 부동산 강사를 집값을 올린 주범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들이 나왔지만, 2부는 부동산 정책의 허점에 초점을 맞춰 현 정부의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균형을 맞추었다. 시청자들마다 나름의 판단을 내렸겠지만,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은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국회의원의 41.5%가 두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거나 보수 언론이 ‘세금폭탄’ 운운하면서 강력한 투기 대책에 대한 저항을 선동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나는 좀 엉뚱하게도 ‘시장’에 대한 우리의 이중기준과 위선을 떠올렸다. ‘신격화된 시장’, ‘무한경쟁의 시장논리’, ‘잔인한 시장논리’ 등과 같은 표현들이 시사하듯이, 진보적인 사람들은 시장을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당연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국가가 관리해온 것들을 모두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내맡기자는 것이니 어찌 시장을 곱게 볼 수 있겠는가. 좋다. 시장을 ‘적’이라고 하자. 하지만 영국의 보수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남긴 이 말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와 싸우는 사람들은 우리의 정신을 강하게 해주고 우리의 기술을 연마시켜 준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돕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당연히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걸 전제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손자병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건 만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는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람에 대해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만 깊이 알려고 한다. 개인이 그러는 거야 당연하지만, 정부 공직자들마저 그런 경향이 농후하다. 사회악으로 간주되는 현상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라면 그 사회악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부동산 투기와 투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만큼 ‘미친 아파트값’에 일조한 가담자들의 행위를 사회악으로 보긴 어렵다. 투기라 한들 법대로 했다면 그런 허점을 방치한 정부를 탓하는 게 옳다. 중요한 점은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가 부동산 강사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무리한 요구라면 비슷하게나마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부동산 강사는 프로고 정부는 아마추어다. 몇몇 프로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이 오히려 투기를 키울 수 있다며 강한 이의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이런 고언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마저 없는 아마추어였다. 어떤 정책이건 시장에 대한 반감에 휩싸인 나머지 해당 시장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당위로만 밀어붙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에서 진보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시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일에만 너무 열을 올린다. 시장을 통째로 기득권 질서에 헌납하고 국가와 공공영역으로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사적 삶에서도 그렇게 산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시장을 깔봐선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금방 얻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사적 삶은 시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국회의원도 자유한국당 61명, 민주당 40명으로 별 차이 없다. 한달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청와대와 행정부처의 1급 이상 국가공무원, 그 관할기관 부서장 등 총 639명의 주택소유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이는 전체의 47%, 서울 강남3구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33%나 된다. 강남 집 보유자는 국세청 80%, 공정위 75%, 금융위 69%, 기재부 54%, 한국은행 50% 등 부동산정책 유관 부처의 비율이 높다.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사적 삶에서 발휘하는 이런 탁월한 시장 감각을 공적 정책에서도 발휘해 제발 성공 확률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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