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현 정부는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와 악덕 투기꾼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냉온탕을 오락가락하던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 냉탕이다. 그런데 냉탕에 들어가면 열은 가라앉지만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9·13 대책 다음을 준비할 때다. 9·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석달이 되어 간다. 시장에선 이번 대책이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주 단위로 발표되는 부동산 거래가격 지수가 최근 서울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강남에서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격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거래절벽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1월 아파트 매매 건수가 3567건으로 10월 전체 거래량(1만190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9·13 대책의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 아니 오래가면 안 된다. 이번 대책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나 쓸 독성이 강한 비상약과 같다. 당장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쓰면 부작용이 순기능을 능가하여 독이 된다. 다음 단계에 쓸 처방약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우선 곁가지부터 치고 보자. 발표 당시 언론은 종합부동산세 인상 및 과세 대상 확대에 주목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9·13 대책의 핵심은 종부세 강화에 있는 게 아니었다. 종부세 증세 효과는 미미하다. 2016년 부동산 보유 관련 전체 세금이 약 14조원이었는데 그중 종부세는 1조5천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9·13 대책으로 더 걷히는 종부세 세금은 정부 예상으로도 겨우 4200억원이다. 전체 보유세 대비 이 정도는 새 발의 피다. 그나마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 중 일부를 줄인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살 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일반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인정비율(LTV) 40% 제한을 받지 않고 시중은행에서 집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눈치 빠른 시장이 이걸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내 주위만 해도 올해 봄부터 부동산중개업자나 은행원으로부터 은행 돈을 빌려 임대업에 나서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여름부터 부쩍 늘자 결국 정부는 8개월 만에 임대사업자 유도 정책을 사실상 거둬들였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담보로 한 임대사업자 대출에 엘티브이 40% 규제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현 정부로선 착한 무능의 좋은 예를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됐다. 원래 부동산 시장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정책 당국자가 자기들 코앞의 목표에만 몰두하느라 전체를 보지 않고 일을 추진하면 이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엘티브이 40%를 갖고 장기임대사업을 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매매차익을 기대하지 않을 거면 자기 자본을 60%나 넣고 임대사업에 나설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9·13 대책의 핵심은 1주택자들의 추가 매수를 막는 조처에 있다. 서울 전 지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 2주택부터 강한 대출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8월부터 엘티브이를 40%로 내린 것만 해도 과도한 규제였다. 지금처럼 주택 값이 높은 마당에 젊은 세대 중 그럴 만한 돈을 갖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정부는 한걸음 더 나갔다. 2주택 이상 보유한 경우에는 규제지역에서 새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1주택자도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지만 이사를 위한 일시적 2주택이면 기존 주택을 최장 2년 안에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대출이 가능하게 했다. 또 정부는 주택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규제지역 내 공시가격 9억원 초과의 고가 주택은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경우 대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금지, 금지, 금지! 이보다 더한 행정만능주의가 없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을 이용해 사는 집 이외의 집을 사려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된다. 주택 시장은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세 들어 살 사람, 자기 집을 한 채만 원하는 사람, 두 채를 원하는 사람, 임대수익을 원하는 사람, 주택 투자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다. 모두 금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 정부는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와 악덕 투기꾼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바둑 격언에 묘수를 세 번 두면 바둑에 진다는 말이 있다. 묘수를 자주 써야 할 정도로 형세를 위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것은 정부다. 국민은 죄 없다. 그런데 일을 망친 사람들이 도리어 국민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다. 냉온탕을 오락가락하던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 냉탕이다. 그런데 냉탕에 들어가면 열은 가라앉지만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9·13 대책 다음을 준비할 때다.
칼럼 |
[주진형 칼럼] 부동산 정책, 묘수가 과하면 바둑을 망친다 |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현 정부는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와 악덕 투기꾼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냉온탕을 오락가락하던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 냉탕이다. 그런데 냉탕에 들어가면 열은 가라앉지만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9·13 대책 다음을 준비할 때다. 9·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석달이 되어 간다. 시장에선 이번 대책이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주 단위로 발표되는 부동산 거래가격 지수가 최근 서울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강남에서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격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거래절벽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1월 아파트 매매 건수가 3567건으로 10월 전체 거래량(1만190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9·13 대책의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 아니 오래가면 안 된다. 이번 대책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나 쓸 독성이 강한 비상약과 같다. 당장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쓰면 부작용이 순기능을 능가하여 독이 된다. 다음 단계에 쓸 처방약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우선 곁가지부터 치고 보자. 발표 당시 언론은 종합부동산세 인상 및 과세 대상 확대에 주목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9·13 대책의 핵심은 종부세 강화에 있는 게 아니었다. 종부세 증세 효과는 미미하다. 2016년 부동산 보유 관련 전체 세금이 약 14조원이었는데 그중 종부세는 1조5천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9·13 대책으로 더 걷히는 종부세 세금은 정부 예상으로도 겨우 4200억원이다. 전체 보유세 대비 이 정도는 새 발의 피다. 그나마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 중 일부를 줄인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살 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일반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인정비율(LTV) 40% 제한을 받지 않고 시중은행에서 집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눈치 빠른 시장이 이걸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내 주위만 해도 올해 봄부터 부동산중개업자나 은행원으로부터 은행 돈을 빌려 임대업에 나서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여름부터 부쩍 늘자 결국 정부는 8개월 만에 임대사업자 유도 정책을 사실상 거둬들였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담보로 한 임대사업자 대출에 엘티브이 40% 규제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현 정부로선 착한 무능의 좋은 예를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됐다. 원래 부동산 시장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정책 당국자가 자기들 코앞의 목표에만 몰두하느라 전체를 보지 않고 일을 추진하면 이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엘티브이 40%를 갖고 장기임대사업을 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매매차익을 기대하지 않을 거면 자기 자본을 60%나 넣고 임대사업에 나설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9·13 대책의 핵심은 1주택자들의 추가 매수를 막는 조처에 있다. 서울 전 지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 2주택부터 강한 대출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8월부터 엘티브이를 40%로 내린 것만 해도 과도한 규제였다. 지금처럼 주택 값이 높은 마당에 젊은 세대 중 그럴 만한 돈을 갖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정부는 한걸음 더 나갔다. 2주택 이상 보유한 경우에는 규제지역에서 새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1주택자도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지만 이사를 위한 일시적 2주택이면 기존 주택을 최장 2년 안에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대출이 가능하게 했다. 또 정부는 주택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규제지역 내 공시가격 9억원 초과의 고가 주택은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경우 대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금지, 금지, 금지! 이보다 더한 행정만능주의가 없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을 이용해 사는 집 이외의 집을 사려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된다. 주택 시장은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세 들어 살 사람, 자기 집을 한 채만 원하는 사람, 두 채를 원하는 사람, 임대수익을 원하는 사람, 주택 투자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다. 모두 금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 정부는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와 악덕 투기꾼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바둑 격언에 묘수를 세 번 두면 바둑에 진다는 말이 있다. 묘수를 자주 써야 할 정도로 형세를 위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것은 정부다. 국민은 죄 없다. 그런데 일을 망친 사람들이 도리어 국민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다. 냉온탕을 오락가락하던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 냉탕이다. 그런데 냉탕에 들어가면 열은 가라앉지만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9·13 대책 다음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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