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6 18:38
수정 : 2019.04.06 22:26
|
5일 산 전체가 불에 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불산’. 잿더미만 남았다.
|
110가구 중 25가구 집 타버린 강릉 천남리 마을
까맣게 내려앉은 집에선 잔불 피어오르고
날리는 재 가루에 “숨 쉬기도 힘들어”
산 위 잔불과의 싸움도 계속
|
5일 산 전체가 불에 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불산’. 잿더미만 남았다.
|
산불이 쓸고 간 강원도의 시골마을에는 재 가루가 날아왔다. 마을 뒤편 타버린 산에는 재가 수북했다. 잔불도 곳곳에 남았다. 주민들은 잔불 걱정에 지난 이틀간 밤새 잠 못 들고 있었다.
지난 5일 낮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이곳 마을의 110가구 가운데 25가구의 집이 이번 화재로 불에 타 사라졌다. 대여섯 가구는 창고나 부속건물이 타는 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 대나무 숲 아래 자리한 한 집은 까맣게 내려앉아 마치 폐가처럼 보였다. 이곳에선 1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부상자 한 명은 2~3도의 화상을 입어 서울쪽 병원으로 갔다고, 마을 이장이 전했다.
지난 4일 밤 11시46분께 이 마을에서 5km쯤 떨어진 남양리의 한 산에서 원인미상의 불이 났다. 속초로 번진 고성 일대의 산불과는 또 다른 화재였다. 산불은 천남리를 둘러싼 산을 지나며 이 마을 곳곳에 불똥을 튀겼다.
|
5일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대나무숲 아래 자리한 한 집의 모습.
|
다행히 큰 불은 꺼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재 가루와 남은 잔불로 고통 받았다. 마을주민 김은영(45)씨는 “바람이 잔잔하다가도 한 번씩 세게 불면 재가 날아와 집 안에까지 들어왔다. 목이 많이 아프다”라며 “아이들이 숨 쉬기 힘들어 해 삼척에 있는 고모집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보낸 김씨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불이 계속 살아나 그제 어제 한 잠도 못 잤다. 불난 집들 사이에 우리 집이 있어 떠날 수가 없다”라며 “비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 장민송(44)씨는 “공기가 안 좋다. 하루종일 매연을 마셨다”면서 “밤에 자려 해도 열이 나면서 얼굴이 부어 잠을 잘 수가 없다”라고 호소했다. 마을 이장 김창진(74)씨는 “불에 탄 집에서 아직도 조금씩 연기가 난다. 소방차들을 불러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타다 만 곳에서 아직 열기가 나온다”라고 했다.
산불이 번진 동네 뒷산은 잿더미로 덮여 있었다. 발을 내딛으면 ‘폭삭’ 소리와 함께 재 가루가 피어올랐다. 타 버린 나무를 만지자 손에 시커멓게 재가 묻어 나왔다. 산 위로 오를수록 탄내가 심해졌고 목이 아파왔다. 옷과 신발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났다.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소방대원과 산불진화대가 잔불을 진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등산로가 아닌 길을 뚫고, 산 중턱으로 올라가 호수를 끌여당겨 진화작업을 했다. 한 산불진화대 대원은 “새벽 5시30분에 출동해 잔불 정리를 했는데, 산 위의 잔불은 꺼도 꺼도 다시 살아난다. 끄고 온 뒤 다시 올라가서 끄기를 계속 반복했다”라고 했다. 그는 전날 화재 현장에서 밤을 샜고, 잠도 차 안에서 잤다고 했다. 목소리가 피곤에 절어 있었다.
|
5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마을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원들이 잔불진압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강릉/글·사진 이정규 기자
j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