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3 08:00
수정 : 2019.06.1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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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오른쪽)이 12일 오후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과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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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판문점서 정의용 등 만나
김정은 조의문·조화 전달
남북관계 복원 지렛대 될지 관심
남북 고위급 통일각서 15분 대화
‘문 대통령 복심’ 윤건영 실장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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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오른쪽)이 12일 오후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과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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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대한 조의 표명 방식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한 조의문과 조화 전달’ 카드를 선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8월18일)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2001년 3월21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고위급 조문단이 방남한 선례와 달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유일한 혈육이자 비서실장 구실을 해온 김여정 부부장을 조의문·조화 전달자로 앞세워 ‘최대한 예를 갖추려 했다’는 후한 평가도 있다. 교착 국면의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정세 냉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침묵 또는 소극적 반응도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고심 끝에 결정한 ‘절충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조화는 12일 오후 5시 판문점 북쪽 지역 통일각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남쪽 당국 대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 대표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한테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리희호 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고 박지원 부이사장이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리희호 녀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희호 여사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갖고 ‘김(여정) 부부장이 남측의 책임있는 인사한테 직접 조의를 전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라는 취지로 김여정 부부장이 밝혔다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민족 화합과 협력을 위해 애쓰신 이희호 여사의 뜻을 받들어 남북 협력을 계속해나가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정의용 실장이 전했다.
오후 5시부터 15분간 진행된 정 실장 등과 김여정 부부장의 대화는,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 남북 고위 인사의 첫 공개 접촉이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없었나’라는 질문에 “없었다”며 “오늘은 고인에 대한 남북의 추모와 애도의 말씀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 실장과 함께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나선 사실 등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한테 보내는 메시지’가 전달됐을 개연성이 있다. 실제 윤도한 수석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었나’라는 거듭된 질문에, ‘없었다’고 하지 않고 “오늘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조의문·조화 수령 관련뿐”이라고 밝혀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북쪽에선 김 부부장을 리현 통일전선부 실장이 수행했다.
남쪽의 기대와 달리 김 위원장이 ‘고위급 조문단 방남’ 카드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두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다. 형식적으론 ‘망자의 당사자 자격’을, 실질적으론 고위급 조문단 파견의 실효성을 고려한 듯하다.
우선 김 위원장이 고위급 조문단을 보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조의문·조전 카드를 선택하는 데 핵심 고려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 이사장의 발인이 14일 아침인데, 북유럽 3국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16일 정오 무렵 귀국할 예정이다. 남북 정상 사이의 간접 대화가 가능하지 않은 터에, 최근 ‘근본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대남 압박에 힘써온 북쪽이 굳이 고위급 당국 대화를 전제한 조문단 카드를 쓸 필요를 강하게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둘째, 남북 사이 조문·조의 표명 선례를 염두에 둔 북쪽 나름의 ‘의전적 고려’도 작용한 듯하다. 이희호 이사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떴을 때 평양 금수산기념궁전(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을 위로하는 등 직접 조문한 인연이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조문단이 아닌 조의문·조화 방식을 택한 데에는 ‘고 박용길 장로 선례’를 참고한 듯하다. 2011년 9월25일 여성운동가·시민운동가·통일운동가이자 고 문익환 목사의 반려인 박용길 장로가 별세했을 때 북쪽은 김정일 위원장 명의의 조전으로 조의를 표했다. ‘문익환-박용길’, ‘김대중-이희호’ 부부에 대한 북쪽의 조의 표명 방식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공통점을 요약하면 북쪽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구분이다.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두차례 회담한 반면, 박 장로는 여러 차례 방북했으나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한 적은 없다. 이 이사장도 북쪽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하지는 않았다. 박 장로를 문익환 목사의 배우자로 간주했듯이, 이 이사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로 간주한 셈이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파주/공동취재단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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