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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9 18:00 수정 : 2019.06.19 19:37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②산재
휴대폰 공장 화학물질 오염 사망 가능성
주야 맞교대로 주 5~6일 근무
유족 동의 없이 이뤄진 부검
경찰 “죽음은 공장과 관계없다”
군병원, 사망진단서 발급 거부
보상도 죽음 지우는 삼성 방식으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베트남 타이응우옌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르우티타인떰의 영정 사진. 딸이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딸의 영정을 붙들고 있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애도되지 않는 죽음은 기억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기록도 남지 않았다. 르우티타인떰(당시 22살). 삼성전자 베트남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2016년 8월31일까지 일한 여성 노동자다. 공장에서 돌연 쓰러진 그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삼성에서 일한 지 4개월 만이다.

“딸은 아주 건강했다. 삼성에 입사할 때 건강검진을 받았고 여기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죽었다. 삼성과 경찰은 돈을 주면서 ‘공장과 상관없는 죽음’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 딸은 분명 삼성 때문에 죽었다.”

떰의 아버지 르우반티엡(52)은 자주 망설였다. 오래 먼 곳을 바라봤다. 근육보다 핏줄이 도드라지는 깡마른 외모,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착실했을 노동의 세월을 짐작하게 했다. 유독 깊은 눈이 인상적이었는데, 딸 얘기를 할 때는 마른기침이 심해 눈동자가 흔들리곤 했다. 스스로를 “세상 잘 모르는 농촌 사람”이라고 낮췄지만 ‘삼성’이란 두 글자는 짧고 강하게 말했다.

[한겨레 라이브_6월19일] 뉴스룸톡: 출연 김완 기자

“주야 맞교대로 주 5~6일 근무”

그는 딸의 죽음이 국제노동단체 보고서에 실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한겨레>는 그가 접촉한 첫 언론이었다.

3년 전 그날 오후 2시 떰과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떰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일과 모레 이틀을 쉬니 엄마를 보러 오겠다”며 즐거워했다. 유일하게 도시 생활을 하던 둘째. 법대에 합격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공장 취업을 택한 아픈 손가락. 그래도 씩씩했던 딸이다.

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을 떠났다. 하노이에 있는 한 전자공장에서 제품 검사 일을 했다. 또래에 견줘 의젓하게 어린 동생을 걱정했고, 또래처럼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 무렵 떰이 “지금은 돈을 벌지만, 나중에 공부해 꿈을 이루자”는 문장을 일기에 적어 두었다는 걸 아버지는 딸이 죽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다 삼성전자 공장에 갔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삼성 공장에 다니며 한 달에 800만~900만동(40만~45만원) 정도를 받았다. 900만동은 베트남 삼성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을 웃돈다. 계약직으로 갓 입사한 떰이 그만큼을 벌었다는 것은 장시간 잔업을 한 결과라는 것이 공장 동료들의 설명이다. 떰의 오빠는 “주야 맞교대로 주 5~6일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머리 아프다는 말 자주 했느냐”

떰과의 마지막 통화가 끝난 지 불과 2시간 뒤인 오후 4시께 다시 전화가 왔다. 떰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의 한국인 직원이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그의 성이 ‘지’인지 ‘박’인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고위층’인 한국인 관리자는 현지 노동자와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인 관리자가 현장 노동자의 보호자한테 연락을 취했다는 건 공장 안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징후였다.

그는 “딸에게 문제가 생겨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전했다. 그리고 “딸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느냐”고 물었다. 떰의 아버지는 너무 당황해 이유를 묻지도 못했다.

떰의 죽음을 기록한 국제환경노동단체 아이펜(IPEN)이 2017년 11월 낸 <베트남 전자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라는 보고서를 보면, ‘떰은 삼성 사내 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오후 4시께 응급치료를 위해 군병원으로 이송됐고, 5시30분께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르우티타인떰의 아버지 르우반티엡을 지난 5월16일 옌딘 집에서 만났다. <한겨레>는 국내외를 통틀어 그가 처음 만난 언론이었다. 옌딘/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유족 동의 없이 이뤄진 부검

오후 6시, 아버지는 딸의 죽음을 통보받았다. 그때 ‘부검’이란 단어를 들었다. 아버지는 부검이란 말의 뜻조차 몰랐다고 했다. “무슨 의학적 조처를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갈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사망 통보를 삼성이 했는지 경찰이 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검이란 말만큼은 또렷하게 말했다. 그건 그의 세계에 없던 단어였다.

떰의 오빠가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부검을 하겠다고 말했고, 이후 가족 중에 내가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했는데, 삼성과 경찰이 다시 부검 얘기부터 꺼냈다”고 했다. 가족의 뜻에 따라 오빠도 반대했다. 하지만 “삼성과 경찰이 이미 부검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딸과 동생을 잃은 가족들은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베트남 역시 우리나라처럼 주검을 훼손하는 일을 꺼린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었는데 왜 부검 얘기부터 들어야 했는지, 그렇게 반대한다고 했는데도 왜 한 것인지 그때도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삼성 산재 문제를 주로 다뤄온 조승규 노무사는 “사망 직후 바로 부검을 제안하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까지 앞세워 부검을 강행했다는 것은 사망을 둘러싸고 뭔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은 공장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사인을 공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로 만들기 위한 대응을 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공장과 관계없다”는 경찰

경찰은 장례식에 도착한 떰의 가족들에게 “떰의 죽음은 공장과는 관계없다. 운이 없었던 것”이라는 말을 했다. 부검이 끝나고 30분 뒤 삼성 직원이 관을 사 왔다. 떰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 관을 판 장의사 때문이었다. 이 장의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삼성 공장에서 사람이 죽어 관을 사 갔다’고 올렸다. 이 글은 얼마 뒤 삭제됐다.

떰은 고향에 묻혔고 그의 물건은 베트남 풍습대로 태워졌다. 장례 절차가 다 끝난 2016년 9월7일 익명의 삼성 관계자가 베트남 지역 언론과 인터뷰했다. “떰은 2년 계약직으로, 4개월 동안 삼성의 직원으로 근무하며 공장의 클린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의복과 제복을 나르는 일을 주 업무로 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경찰은 떰이 ‘심근염’(심장근육의 염증)으로 사망했다고 10월6일 지역 언론에 밝혔다. 베트남 여성환경노동단체 시지에프이디(CGFED)는 경찰로부터 떰이 삼성전자 타이응우옌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던 중 두통으로 쓰러져 응급치료를 위해 91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후 5시30분께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검 결과 독성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군병원, 사망진단서 발급 거부

하지만 유족들은 경찰의 조사 결과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있다. 떰의 오빠는 의사에게 사망진단서 발급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의사는 “사망진단서는 없다. 다만 사망 추정 시각은 5시”라고 말했다. 경찰의 공식 발표보다 30분 이른 시각이다. 심지어 사망 장소가 병원인지, 공장인지도 불분명하다. 타이응우옌 91군병원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도 “삼성 공장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떰의 죽음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떰은 삼성에 채용될 때 건강검진을 받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4개월 만에 공장 안에서 사망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국내 산업재해 기준표를 보면 심장질환의 하나인 심근염은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비롯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독성물질에 노출돼 발병하기도 한다. 국내에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주당 70시간을 일한 뒤 급성 심근염으로 사망해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 떰이 집으로 송금한 금액과 가족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떰은 주당 60~70시간 근무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야 맞교대로 일했으니 긴 시간 불규칙한 노동으로 고통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과로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떰이 숨진 타이응우옌 군병원 입구.(아래) 군병원 의사는 <한겨레>에 “삼성 공장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과로사·유해물질 노출 가능성

삼성이 떰의 업무에 대해 ‘클린 사무실에서 의류를 운반했다’고 설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클린룸은 제품의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먼지를 통제하는 공간이다. 방진 체계 때문에 환기 효율이 낮다. 클린룸 내부에는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더 오래 머문다. 떰이 유기화합물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의류 운반도 ‘교차 노출’ 위험이 있는 직무다. 교차 노출이란 ‘본인이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오염된 물질과 접촉하며 화학물질에 감염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본인이 직접 사용하지 않았던 화학물질에 의해 교차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은 이미 국내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실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클린룸은 공기를 재순환하는 설비 특성상 다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재유입되거나 섞여 머물러 발암물질이 2차 생성물질(공정 부산물)로 만들어질 수 있다. 한 의류매장에서 비닐 포장되어 있던 의류를 뜯어 진열하는 일을 하던 노동자가 생산 과정에서 의류에 묻은 화학물질의 독성 때문에 건강상 문제를 일으켰던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삼성의 ‘국내 휴대폰 공장 작업 측정서’를 보면, 휴대폰 공장 클린룸에서는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유해 화학물질이 여러 종 쓰인다. 떰이 운반한 의류(방진복)도 화학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방진복을 세탁하는 과정에서도 먼지 및 정전기 방지를 위해 많은 유기용제나 화학약품이 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노동자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고졸)과 전자공장 근무 경력을 갖춘 떰이 의류 수거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삼성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삼성은 견습공들도 생산라인에 투입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시키는데, 계약직으로 정식 입사시킨 직원에게 옷정리만 시켰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떰의 오빠가 자신의 결혼 사진에 숨진 동생을 합성해 넣었다.
보상도 삼성 방식으로

떰이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물건도 치우지 못한 채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는 딸이 “독성물질 때문에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오빠 역시 “화학물질을 취급한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죽은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고 싶다”고 했다.

떰의 가족은 삼성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사과도 받지 못했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뒤 다시 유가족과 만난 삼성 직원 지아무개씨는 2억동(약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다만, 1억동씩 두번에 나눠서 주겠다고 했다.

베트남 노동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업무 연관성이 인정되면 3년 월급, 인정되지 않으면 1년 월급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이 제시한 금액은 떰의 2년치 월급 정도다. 삼성은 떰의 죽음과 업무 연관성을 인정한 것일까.

삼성 공장 산재 문제와 관련해 오래 활동해온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사건 자체를 소거하는 삼성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외부 발설 등을 어렵게 만들어 암암리에 문제를 봉합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이런 딜레이 지급 사례가 있었다. 보상비 항목을 잡지 않기 위해 사업비에서 돈을 조금씩 떼어 모아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는 가장 비밀이 많은 산업”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등의 오랜 투쟁으로 첨단 청정 산업으로 포장됐던 반도체 산업의 위해성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클린룸’이 노동자들에게 깨끗한 환경이 아닌 제품 오염을 제어하기 위해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된 공간임도 드러났다.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백혈병 등 질환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에 합의했지만, 질병의 원인이 공장에 있었음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련 화학물질의 공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자산업 유해성 공동대응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인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ICRT) 활동가 테드 스미스는 “전자업계는 가장 비밀이 많은 산업”이라고 말한다.

떰의 죽음에 대해, 삼성 공장 노동자의 건강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삼성에 던졌다. 삼성은 “전 임직원이 안전한 사업장에서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될 경우 철저하게 개선하고 관리하겠다”고 답했다.

하노이 타이응우옌 옌딘(베트남)/김완 이재연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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