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지난 4월부터 삼성전자 아시아 주요 생산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및 건강, 단결권 보장 여부 등을 조사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 공장 전경.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파리지방법원,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 예비기소
한국 중국 베트남 공장에서 노동자 인권 침해 의심
직접적 혐의는 소비자법의 기만적 상업행위
노동환경 문제로 유럽에서 기소된 건 이번이 처음
<한겨레>는 지난 4월부터 삼성전자 아시아 주요 생산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및 건강, 단결권 보장 여부 등을 조사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 공장 전경.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프랑스 법원의 수사를 받고 있던 삼성전자가 결국 기소됐다. 삼성전자 아시아 공장에서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거짓 홍보한 혐의다. 유럽 수사기관이 삼성 노동환경 전반을 문제 삼아 기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식 재판으로 가게 되면 삼성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화학물질 노출과 산업재해 은폐, 초과근무 강요 등의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한다.
프랑스 시민단체 셰르파(Sherpa)와 액션에이드 프랑스(ActionAid France)는 3일 보도자료를 내어 프랑스 파리 지방법원이 최근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을 소비자법 위반(기만적 상업행위) 혐의로 예비기소했다고 밝혔다. 예비기소는 예심에 회부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예심이란 법원에 소속된 수사판사가 공소권 행사를 전제로 범죄행위자를 특정하고 해당 범죄의 상황과 결과를 확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중요한 사건의 경우 검사가 수사판사에게 수사를 의뢰하고, 수사판사가 수사와 기소를 맡는다. 예비기소 단계에서도 항소를 할 수 있지만, 예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상당수가 기소와 정식 재판으로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르노 반 륌베크 수사판사는 예비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삼성 공장에서 노동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셰르파와 액션에이드 프랑스는 지난해 법원에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과 한국 본사를 고발했다. 삼성 중국 공장에서 아동노동이 이뤄졌고 한국과 베트남 등 공장에서 산업재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데도 삼성이 ‘노동권과 인권을 보호·증진하고 있다’고 소비자들을 속였다는 취지다.
고발장에서 이들 단체는 “삼성은 누리집이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등을 통해 ‘모든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다’ ‘국제기준과 국내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삼성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존엄성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국제시민단체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통해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런 보고서와 언론 기사 등 모두 87건의 자료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셰르파의 상드라 코사르 사무국장은 “최근 삼성 아시아 공장 노동 실태에 대한 <한겨레> 보도도 법원에 추가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법원이 다국적기업 국외공장의 노동환경을 정식 수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을 두고 현지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셰르파와 액션에이드 프랑스는 2013년과 2016년에도 삼성을 고발했지만 번번이 무혐의로 끝나거나 기각됐다. 셰르파의 클라라 곤잘레스 활동가는 “이제까지는 노동자 인권과 상업행위는 별개로 다뤄야 하며, 만약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국 본사의 책임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며 “하지만 노동인권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더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할 문제로 삼성 한국 본사는 이번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프랑스 법원이 삼성에 적용한 기만적 상업행위 혐의는 프랑스 소비자법 112조에 해당한다. 이 조항은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의 광고나 마케팅을 금지하고 있다. 코사르 사무국장은 “프랑스는 2017년 대기업의 인권실천 점검 의무를 법제화했지만 국내 고용 규모가 5천명 이상인 기업만 적용받기 때문에 삼성 프랑스 법인은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일종의 우회로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법원은 삼성 아시아 공장의 노동환경 실태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설 전망이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만유로(약 4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재판부가 삼성이 이런 기만적 행위로 이익을 봤다고 판단하면 평균 연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올릴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프랑스에서 30억달러(약 3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코사르 사무국장은 “삼성을 둘러싼 의혹을 하나씩 사실로 입증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삼성도 이번에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예비기소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셰르파가 세 번이나 고발해서 그간 검찰이 기각했고, 지난해 연말 수사판사한테 갔다. 그 뒤에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셰르파 활동가는 “우리는 허위사실을 발표하지 않는다. 삼성이 거짓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언론 대응 전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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