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4 20:03
수정 : 2019.07.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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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시행한 첫날인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를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강점 시기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처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화면) 제조에 필수적인 물품 3종의 수출을 금지했다. 후쿠시마/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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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분쟁에 일본도 통상전쟁 가세
자국 기업 위주로 생산·공급 재편 뜻
“한국 피해 크지만 섣부른 대응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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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시행한 첫날인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를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강점 시기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처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화면) 제조에 필수적인 물품 3종의 수출을 금지했다. 후쿠시마/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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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미국과 중국이 자국 시장에 들어오는 상대국 수입제품에 고율의 관세폭탄을 터뜨리며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한 지 꼭 1년이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4일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 등 3대 전략물자 품목 수출통제 조처를 실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가 촉발한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아베 총리도 트럼프의 통상보복을 흉내 내며 통상전쟁에 가세한 꼴이다. 통상 강대국들이 전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온통 혼돈에 밀어넣고 있고, 합리적 논리도 별로 없이 ‘독과점적 수출 지위’ 등 힘의 논리를 배경으로 한 무역보복이 횡행하면서 한국의 ‘수출 경제’도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의 대한국 전략물자 수출통제에 따라 세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당장 이날부터 수출계약 건마다 허가 신청을 내야 한다. 그동안은 최대 3년치 물량에 대해 한번에 국외반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에스케이(SK) 관계자가 거래처인 일본의 부품·소재 기업한테 4일까지 가능한 한 많은 재고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외양으로는 전면 금수 조처를 취한 건 아니어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상호호혜 자유무역 정신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비켜 가려 하지만, 일본은 사실상 한국으로의 전략물자 수출을 봉쇄하겠다는 심산이다. 수출 승인·불허 심사에 통상 석달가량 소요되는 터라 이번 조처에 따른 첫 수출제재 발동 사례가 당장 나올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 2탄’으로 첨단재료 수출과 관련해, ‘신뢰 가능한’ 특정 국가는 허가 신청을 면제·우대하는 ‘화이트(백색)국가’ 목록(27개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처를 다음달에 또 꺼내들 것으로 점쳐진다.
전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아베 정부의 이번 수출 규제를 다룬 기사에서 “아베 정부가 겉으로 자유무역 신봉자를 자처해오면서도 트럼프의 (무역보복) 통상전술을 채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4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연 ‘일본 수출통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일본의 조처는 국제규범에 반하고, 오랜 기간 정착된 글로벌 공급체계를 흔들어 세계 경제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후 수십년간 글로벌 표준 규범으로 확산돼온 전세계 자유무역 질서와 규범을 아베 정부가 정면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 등 정보기술(IT) 제품의 국제 분업질서에서 생산·공급 가치사슬을 일본 위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도 연일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을 비판하는 논평을 일제히 내고 있다. 이날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주장해온 ‘규칙이 있는 자유무역 추진’ 이념에 반한다는 것”이라며 “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활발한 무역으로 발전해왔다. 규칙에 근거한 자유무역은 ‘통상 국가’의 생명선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날 <도쿄신문>에서 오사나이 아쓰시 교수(와세다대 비즈니스스쿨)는 “일·한 기업이 함께 무너져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이 성장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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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보복에 맞보복을 거듭해온 전세계 무역 2강(미국·중국) 사이의 무역분쟁은 돌파구를 좀체 찾지 못한 채 격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중 통상전쟁의 장기 지속이 하나의 ‘새로운 악순환 체제’처럼 공고화되면서 세계 경제는 큰 폭으로 둔화되고, 한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세계 무역동향 집계기관인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 통계를 살펴보니, 신흥국 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크고 넓게’ 강대국 통상전쟁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석달간 수출 증감률을 보면 전세계 -0.5%(전년 동기 대비), 신흥시장 경제 -1.0%, 선진 경제 +1.2%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수출 감소율이 평균 -7.2%에 이른다. 미-중 무역분쟁 파고가 상품 수출에 본격 파급되기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출은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우리가 주로 중간재를 파는 중국의 수출이 급감하고, 주요 수출시장 중 하나인 미국의 수입이 급감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의 전세계 수출은 지난해 10월(세계 교역량 연중 최고치) 14.3%(전년 동월 대비)에서 지난 5월 1.1%로 대폭 둔화됐다. 미국의 전세계 수입도 같은 기간에 9.0%에서 -0.02%로 크게 줄었다. 올해 1~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각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 24.3%, 미국 13.6%, 일본 5.3%다. 일본산 제품 수입액은 우리 전체 수입액의 9.7%다.
통상 강대국들의 자유무역질서 파괴 행동이 잇따르면서 세계 교역(수출입) 신장률 전망치에 대한 비관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올해 세계 교역 신장률 전망치를 3.6~3.7%로 예측(작년 말)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WB)은 최근에 이 전망을 2.1%(오이시디·5월)~2.6%(세계은행·6월)로 대폭 낮춰 수정했다. 세계 교역이 줄어들면 한국 경제는 곧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구조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경제발전 과정에서 수십년간 자유무역 수혜를 입은 나라’라고 말한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가 맞보복 수입규제를 발동하기도 어렵고, 자칫 섣불리 대응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며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계완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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