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1 21:52
수정 : 2019.07.1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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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수훈 전 일본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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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보복 장기화 양상…대책 고심
아베정부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국공세 수위 지속적으로 높여
한·일 갈등 실타래 풀기 쉽지 않아
정부, 국제여론전·미 협조 힘쏟아
고위 관계자 “현실적 타협점 쉽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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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수훈 전 일본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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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 규제’ 형식의 경제보복 조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는 다차원적이다. 일본을 향해 ‘한-일 양자 협의’를 촉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국내적으론 장단기 ‘충격 흡수’ 방안 마련, 대외적으론 국제여론전과 미국의 지원·협력 이끌어내기에 힘을 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외교적 해결을 위한 차분한 노력”을 강조한 데 이어, 10일 청와대에서 경제계 주요 인사들과 두시간 넘게 간담회를 하며 사실상 전면에 나섰다. 정부는 8∼9일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를 긴급 안건에 올려 국제사회에 그 부당성을 환기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무역기구 제소 검토 카드까지 시야에 둔 행보다.
정부가 특히 공을 들이는 건 미국 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에티오피아 출장 중인 10일 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통화하며 일본의 조처가 “우리 기업에 피해를 야기”하고 “세계 무역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호소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해를 표명했다”는 게 외교부 쪽 설명이다. 이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을 예고 없이 방문한 데 이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르면 다음주 방미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대한 경제보복’ 기조에서 물러날 조짐이 전혀 없다. 정부의 대응책이 조기에 ‘효과’를 발휘해 한·일 양국의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하지 않으리라 장담하는 이는 정부 쪽이든 전문가 쪽이든 찾기 어렵다. 갈등과 대립이 근본적이고 다차원적이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상 차원의 결단이 있더라도 양쪽이 근본적인 입장에서 후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베 정부의 이번 조처가 21일 참의원 선거 득표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 초기 분석도 쏙 들어갔다. 아베 정부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국 공세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며 치밀하게 움직인 정황이 짙어서다. 대법원 판결 두달 뒤인 지난해 12월 일본 해상 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동해 쪽 공해에서 북한 선박 구조 작업을 하던 한국 광개토대왕함에 고도 150m, 거리 500m까지 접근하는 저고도 위협 비행을 해 한-일 양국이 격한 갈등을 빚은 게 이번 사태의 전초전적 성격을 지닌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쪽은 당시 오히려 한국군이 ‘화기 관제 레이더’를 쐈다며 언론을 동원해 ‘안보 문제에서 한-일의 대립’을 부각하는 반한 캠페인에 열을 올린 바 있다. 아베 정부가 이번에 ‘물증’도 없이 한국이 북한에 전략물자를 밀반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아베 정부의 근본 의도를 정확히 분석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안팎의 환경 조성’의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한국도 궁극적으로는 일본에 위협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 평화헌법 개정 명분을 쌓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신정화 동서대 교수(국제관계학)도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개정해 한반도 식민지배부터 중국 침략, 태평양 전쟁까지 역사적 과오를 덮고 군대를 보유한 강한 일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고 짚었다.
아베 총리의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일본 만들기’ 프로젝트는 한국·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의 거부감이 강하지만, ‘중국 견제’에 골몰해온 미국 정부는 생각이 다르다. 한국의 미국 지원·협력 이끌어내기가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적잖은 까닭이다. 이기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일이 암묵적인 공조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해법이 마땅치 않을수록 ‘대화의 끈’을 놓치지 말고 기회를 탐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일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터라 갈등의 격화를 막으려면 각급 레벨의 대화가 절실하다”며 “당장은 풀리지 않겠지만 자주 만나 접촉면을 늘려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이기태 위원은 “궁극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필요하지만 당장은 어렵고, 올 하반기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회로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결국 핵심은 물밑 교섭”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이제훈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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