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첫 ‘수출규제’ 6시간 가까이 실무회의…썰렁한 사무실에서 악수도 없어

한국과 일본 정부 대표들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에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대한 실무회의를 하기 위해 앉아 있다. 왼쪽은 경제산업성의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 오른쪽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일, 회의장에는 “사무적 설명회” 종이 한장 붙여
일본 쪽 대표들, 한국 대표 입장에도 미동 안해
오후 2시 시작된 회의 5시간50분 뒤에야 끝나

한국과 일본 정부 대표들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에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대한 실무회의를 하기 위해 앉아 있다. 왼쪽은 경제산업성의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 오른쪽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일 양국 정부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처와 관련해 12일 일본 도쿄에서 첫 실무회의를 했다. 일본 대표들이 회의 시작 전부터 냉랭한 태도를 보인 가운데, 이날 회의는 거의 6시간 가까이 진행돼 양쪽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관리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제산업성은 12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경제산업성에서 과장급 비공개 실무회의를 열었다. 오후 2시께부터 시작된 회의는 저녁 7시50분까지 이어졌다. 경제산업성의 브리핑이 오후 4시에 예고됐던 점에 비춰보면 애초 예정 시간보다 3배나 회의가 길어진 셈이다. 한국에서는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대표로 참석했고, 일본에서는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처를 발표한 이후 처음 열린 실무회의였다.

이날 회의는 참석자들이 발언하기 전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1분만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일본은 장소 선정부터 한국 참가자들에 대한 응대까지 한국을 홀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회의가 열린 경제산업성 별관 10층 사무실에는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실무적) 설명회”라고 쓴 A4 용지 두배 크기 종이 한장이 나붙었다. 협상 테이블에는 양국 협상 담당자들의 이름표도 없었다.

일본 쪽 대표는 포스트잇으로 인덱스 표시가 촘촘하게 돼 있는, 법령집으로 추정되는 두꺼운 책자와 서류 뭉치 4개를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일본 대표들은 한국 대표를 기다리며 줄곧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한국 대표가 들어와도 정면만 바라보며 일어나지 않았다. 양쪽은 인사도, 명함 교환도 하지 않았다. 회의 장소도 정돈된 곳이 아니었다. 테이블과 간이의자가 한 귀퉁이에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기자재 파손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뒤 일본 조처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조율 방안을 찾기 위해 양자협의를 하자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일본은 ‘실무적 설명’만 하겠다며 과장급 회의에 응하는 데 그쳤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수출관리 당국에서 이번 운용 재검토(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처)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구받아 실무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실 확인이 (회의) 목적으로, 한국 쪽과 협의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