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9 11:25
수정 : 2019.07.19 13:59
|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9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외무성에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서,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해서 일본이 요구한 제3국 의뢰 중재위 설치에 한국이 응하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다. 도쿄/지지 연합뉴스
|
일본 요구 중재위 설치 한국 거부에 항의
“한국 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 뒤엎는 일 해”
남관표 대사 “일본의 일방적 조처 관계 근간 해쳐”
고노 “잠깐 기다리세요” 남 대사 발언 끊고
“한국 정부 제안 못 받아들여…극히 무례”
|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9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외무성에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서,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해서 일본이 요구한 제3국 의뢰 중재위 설치에 한국이 응하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다. 도쿄/지지 연합뉴스
|
일본 정부가 19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논의할 중재위원회 구성에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며,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 과정에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고 들어가서 “극히 무례하다”고 공격하는 장면까지 벌어졌다.
고노 외상은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해 일본 쪽이 주장한 ‘제3국 의뢰’ 방식의 중재위 설치 요구 시한(18일)까지 한국 정부가 답변을 주지 않았다며 항의했다.
고노 외상은 머리 발언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 아베 신조 정부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에 따라 국제법 위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한 청구권협정 때문에 1월에 (양자) 협의를 요구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 응하지 않았다. 중재위 설치 제안도 응하지 않았다. 국제법 위반 상태를 이 이상 방치하지 않도록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는 조치를 즉시 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근저에서 뒤엎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대사님이 본국에 정확히 보고하고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시정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남 대사가 “우리 정부에 잘 전달하겠다”고 답한 뒤, “양국 사이에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처가 한-일 관계의 근간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대화를 통해 조속히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양국 관계를 해치지 않고 소송이 종결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의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강제징용 문제 해결안으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1대1로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을 돕는 방안을 제안했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고노 외상이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남 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은 뒤 “한국 쪽의 제안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언론에도 공개되는 머리 발언 도중에 상대편 발언을 끊고 들어가는 행동은 이례적이기도 하고 결례에 해당할 수도 있다. 또한, 고노 외상은 이어서 “(한국 정부 제안은) 국제법 위반의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에 한국 쪽에 전달했다. 그걸 모른 척하면서 다시 제안하는 것은 극히 무례하다”고 거친 말도 사용했다. 고노 외상은 남 대사가 “일본의 일방적 조처”라며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지적하자, 일본의 수출 규제를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시키지 말라고 비난하기도 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이른바 “대항조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한 것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잇달아 내렸을 때인 지난해 10월 30일과 11월 29일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배상 판결이 나온 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경제협에 따라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모두 해결됐으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로 규정된 외교 경로를 통한 협의, 양국 직접 지명 위원 중심의 중재위 구성, 제3국 의뢰 방식의 중재위 구성 등 3단계(3조 1~3항) 절차를 차례로 요구해 왔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는 의무 조항은 아니며, 일본도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외교 경로 협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중재위 설치 요구에 대해서 행정부가 삼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서 사법부 판단에 개입할 수 없는 점을 들어서 일본 쪽 요구를 거부했다.
고노 외상은 이날 ‘대한민국이 일-한 청구권협정에 근거한 중재위에 응할 의무를 불이행한 것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담화도 냈다. 고노 외상은 이 담화에서 “일-한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때 체결한 일-한 기본조약 및 관련 협정의 기축 위에서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며 “이에 불구하고 지난해 일련의 한국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에 대해서 배상 청구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런 판결은 일-한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일본이 요구한) 중재위 설치가 되지 않은 것은 극히 유감이다. (한국이) 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인 중재에 응하지 않은 것은 한국이 더욱 협정 위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을 포함해서 한국 쪽에 의해서 생긴 어려운 일-한 관계라는 현실을 감안해서 한국에 대해서 필요한 조처를 강구해나갈 생각이다”며 한-일 관계가 악회된 것은 한국 책임이라 주장을 펼쳤다. 또한, 이는 일본이 주장하는 이른바 “대항 조처”를 앞으로 공식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