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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1 17:29 수정 : 2019.07.21 19:04

조형근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울부짖는 중국인이 우편낭 안에 넣어지고 입구가 단단히 잠겼다. 그는 우편낭 안에서 날뛰고 울고 소리 질렀다. 우편낭은 풋볼처럼 차이고, 푸성귀처럼 오줌을 맞았다. 니시모토(가명)는 자동차에서 휘발유를 꺼내 우편낭에 들이붓고 불을 붙였다. 휘발유는 한꺼번에 타올랐다. 우편낭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신음이 났고, 혼신의 힘으로 우편낭이 날아올랐다. 우편낭 스스로 날아올라 스스로 넘어졌다. 어떤 전우들은 이 잔학한 불장난을 즐거워했다. 우편낭은 지옥의 비명을 지르며 불덩어리처럼 굴러다녔다. 니시모토는 ‘어이, 그렇게 뜨거우면 식혀줄까?’ 하면서 수류탄 두 발을 우편낭 줄에 연결하고 연못 속으로 던졌다. 우편낭이 가라앉았고, 수류탄이 수중에서 작렬했다.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조용해지자 놀이가 끝났다. 이런 일은 전쟁터에서는 아무 죄악도 아니다. 단지 니시모토의 잔학성에 우리가 기가 막혔을 뿐이다.”

1937년 12월21일, 일본 육군 제20사단 16연대 상등병 아즈마 시로가 난징 최고법원 앞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50년이 지난 1987년, 노인이 된 아즈마가 당시의 일기를 토대로 <나의 난징플래툰― 소집병이 체험한 난징대학살>을 펴냈다. 자신의 학살 가담도 고백했다. 이로써 난징대학살을 스스로 밝힌 첫 인물이 되었다. 2006년 사망 때까지 일곱 차례 중국을 찾아 사죄하고 학살을 증언했다.

1993년 옛 일본군 오장 니시모토가 아즈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아즈마는 1, 2심에서 패소했다. 원고 쪽은 일기가 원본이 아니라 전후의 사본이며, 사람을 넣을 만큼 큰 우편낭은 없었고, 난징법원 부근에 연못도 없었다며 일기가 날조라고 주장했다. 아즈마 쪽은 원본 수첩을 그대로 옮긴 사본임을 강조하고, 사람을 넣을 만큼 큰 당시의 우편낭을 찾아냈으며, 난징법원 근처에 세 개의 연못이 표시된 당시 지도들을 제출했다. 아즈마는 최고재판소에서도 패했다. 증거들은 기각됐다. 여기서 실체적 진실을 따지지는 말자. 주제는 딴 곳에 있다.

사실 아즈마의 일기 자체에 죄책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쑨거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논문 ‘중일전쟁, 감정의 기억과 구도’에서 일기의 진정한 가치는 학살의 폭로보다 일본군에 존재했던 폭력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일본군이 중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월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데 있다고 지적한다.

쑨거의 지적은 전후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지식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패전 직후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닮았다. 마루야마는 군국주의 일본에 사람 사이의 수평적 윤리가 부재했다고 고발한다. 모든 사람은 오직 수직적 위계 속에 위치하며,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은 당연하다는 믿음 아래, 일반 사병들이 점령지 주민에게 무한 폭력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목하 일본의 경제보복이 진행 중이다. 일본 처사의 부당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한국의 성장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의 비판적 문화연구자 사카이 나오키는 소위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에 확산된 반동적, 차별적, 배타적 정치 경향을 ‘히키코모리 국민주의’로 명명한다. 이 폐쇄 성향은 옛 식민지이던 한국, 대만의 민주화와 경제발전 동시 성취에 대한 반동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성장은 물론이다. 동아시아 내 미국의 하청 제국이라는 일본의 위상은 하락했지만, 이웃나라 사람들을 멸시하는 일본인의 습관은 여전하다는 자기비판이다. 일본에는 아직도 사람과 나라 사이가 수평적일 수 있다는 윤리감각이 부족하다.

한국인은 어떨까? 2017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에게 ‘경의’를 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대해 베트남 외교부가 항의를 한 일이 있다.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이 뼈아팠다. 키워줬더니 건방지다, 삼성전자 뺄 때가 됐군 등등. 최근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재계약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도 비슷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십보백보라는 말은 아니다. 한-일 관계와 한-베 관계는 다르고, 정부의 정책과 네티즌 댓글의 경중도 다르다. 베트남의 항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태도의 문제는 남는다. 일본에게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약하다고, 못산다고 업신여기는 태도다. 일본보다는 좋은 나라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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