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 류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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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 <한겨레21> 기고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못하는 건 국제법 상식”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 류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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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엔 독도가 아닌 강제징용 문제다. 일본의 무역 제재로 불이 붙었지만 발화 원인은 지난해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물렸다. 일본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일 제국주의 시절 피해를 본 우리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재현됐다. <조선일보> 등 우리나라 보수 우파 언론들까지 일본 편에 가세하면서 혼란스러운 모양새지만,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겐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지지한다. 그가 왜 개인청구권이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지 일본 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설명하는 글을 보내왔다.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0월30일 신일철주금에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한 판결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다”라고 비판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도 “판결은 폭거이며 국제법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일본의 대다수 미디어는 이런 아베 정부의 자세를 추종하면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한국 정부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주주의국가에서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은 분리돼 있는 게 원칙이다. 삼권이 하나에 집중되면 독재정권이 되고, 권력 남용이 일어나며,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될 위험이 매우 커진다.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에는 “권리가 확보되지 않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지 않은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삼권분립’ 대법 판결, 정부와 다를 수도
삼권분립 아래 사법의 중심적 역할은 시민의 기본 인권을 지키면서 입법·행정을 점검하는 것에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 대법원이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다른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 본연의 모습으로 전혀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폭거라고 비판하는 일본 정부와 그런 정부를 추종하는 일본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의 삼권분립이 무엇인지, 삼권분립 아래 사법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국제인권법상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일본 최고재판소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실체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해왔다.
예를 들어 1991년 8월27일 일본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이른바 일한청구권협정에 있어서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해결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중략) 일한 양국이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적 보호권을 상호 간에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이른바 개인의 청구권이라는 것은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 법원도 중 피해자 ‘실체적 청구권’ 인정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7년 4월27일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 니시마쓰건설에 대해 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판결에서 배상 관계 등에 대한 외교보호권은 포기됐지만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청구권이 실체적으로 소멸되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중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한 중–일 공동성명에 따라) 해당 청구권에 기반해 소구하는 권능(재판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을 잃은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 최고재판소 판결에서 니시마쓰건설은 승소했지만 강제징용 피해자와 화해에 응했다. 이 최고재판소의 해석은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 최고재판소 해석에 따른다면 개인의 실체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신일철주금이 임의적 그리고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한일청구권협정은 어떤 법적 장애도 되지 못한다.
아베 총리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것이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의미라면, 그것은 일본 정부의 지금까지 견해와 최고재판소 판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답변으로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감전사할 수 있는 위험이 큰 용광로에 코크스(골탄)를 투입하는 등 가혹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제공받은 식료품은 극소량의 변변치 않은 것에 불과했고,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고 도주라도 하면 체벌당하는 등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이것은 강제노동(ILO 제29호 협약)이나 노예제(1926년 노예제조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다.
강제징용 소송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구제를 원하며 제소한 것으로, 사회적으로도 해결책을 간구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런 문제는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 있는 내용으로 해결해야 한다. 피해자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 간 합의는 어떤 것이라도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일 기업, 자발적 사죄·배상 나서야
강제징용 문제의 본질이 인권침해인 이상 무엇보다 피해자 개인의 피해가 구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인권침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죄와 배상을 포함한 조처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인 하나오카 사건, 니시마쓰건설 사건, 미쓰비시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 사건 등은 소송을 계기로 일본 기업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모은 돈으로 기금을 설립해 피해자 전원 구제를 추진했다. 또 피해자 개인에게 금전을 지급할 뿐 아니라 수난비와 위령비를 세우고 매년 중국인 피해자들을 불러 위령제를 열었다.
신일철주금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강제징용 피해자 모두의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이는 기업이 국제적 신뢰를 얻고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도 경제 전체를 위해 일본 기업의 이런 조처를 지원해야 한다.
강제징용 피해와 관련해 일본 정부와 일본국의 책임도 문제가 된다. 강제징용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뒤 전시체제 아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1942년 일본 정부가 제정한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에 따른 관 주도 방식의 알선과, 1944년 일본 정부가 식민지 조선에 전면 발동한 ‘국민징용령’으로 징용이 실시되는 가운데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와 신일철주금을 비롯한 일본 기업의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에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억제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자각하고 강제징용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조처를 지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오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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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13년8개월 만의 승소 판결 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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