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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3 16:57 수정 : 2019.07.23 19:10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으킨 ‘경제 도발’의 목표는 무엇일까. 아베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발표’가 지난달 말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직후에 나왔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아베 총리는 G20 개최 성과를 국내 정치의 호재로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들여 주최한 G20은 폐막 다음날 남-북-미 정상의 전격적인 판문점 회동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고 전세계의 눈과 귀는 한반도로 쏠렸다. 아베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베 정부는 곧바로 ‘보복’의 칼을 빼 들고 한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반도의 급속한 냉전체제 와해는 아베 정권에는 재앙과 같은 일이다. 2012년 두 번째로 집권한 아베 총리가 전후 최장기 집권을 이어가는 데 한반도 긴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베 정권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조성된 긴장 국면을 활용해 곤경을 탈출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 평창올림픽 이후 완연해진 한반도 긴장 완화로 정치적으로 써먹을 ‘외생변수’를 영구히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아베의 꿈은 평화헌법을 바꿔 일본을 ‘전쟁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승승장구하며 아시아를 지배하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베의 꿈이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국내 여론을 제압해야 한다. 여론의 흐름을 바꾸려면 동북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의 지속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런 갈등 구조가 해체될 조짐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엔 판문점에서 세 나라 정상이 한꺼번에 만났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결코 반길 수 없는 구조적 변화다.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를 대결 국면으로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아베 정권에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경제 보복’의 이유로 ‘전략물자의 대북 유출’을 들먹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한발 물러섰지만, 이 발언은 아베의 눈이 먼 곳까지 내다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아베 정권은 앞으로 남북 화해가 진전되고 경제협력이 본격화할 경우, 남북 경제교류가 북한의 무기 개발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남북협력에 훼방을 놓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목에서 일본 우익과 한국 보수의 전략적 이해관계의 일치가 드러난다. 한국의 수구보수 세력은 남북의 대결과 한반도 긴장을 존립의 근거로 삼아 왔다. 북한의 위협을 앞세워 남한 국민의 안보 불안을 자극하고 그렇게 조성한 불안감을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키워왔다. 북-미 대화와 남북 화해는 그 안보 기득권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한국 보수세력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역전시키려고 한다. 일본 우익과 한국 보수의 관심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한국 수구보수의 이데올로기 기관지인 <조선일보>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이 아베의 경제 도발을 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둔하거나 부추기고 그 파장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베 정권이 경제 도발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일본 경제에도 타격을 입히는 일일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의 경제 도발은 일종의 자해공갈이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것이 자신들의 장기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자해공갈은 성공할 수 없다. 한-일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사슬처럼 얽혀 있어서 어느 하나를 끊어내면 그 파장이 모든 곳에 미친다. 더구나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냉전 해체는 되돌릴 수 없는 필연적 경로를 밟고 있다. 일본 우익과 한국 보수는 이 거대한 변화를 저지하려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며칠 전 <후지티브이> 논설위원이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들먹인 것은 일본 우익의 본심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경우다. 한국 보수의 속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동의 힘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못해도 창조를 가로막거나 파괴할 힘은 있다. 역사를 되돌리려는 일본 우익과 한국 보수의 이 몸부림에 온 국민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대처해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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