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반도체 재료 수출규제 대책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완화’를 추진하면서 관련 노동자의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조치가 잇따른다. 이걸 보니 10년 전 ‘그 사건’이 또 떠올랐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다며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었다. 2차 회의의 ‘대통령 말씀’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잡 셰어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강구하라”였다. 지시가 구체화된 건 한달 뒤인 2월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고용안정을 위한 재계 대책회의’였다. 거기서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28% 삭감한다.” 그들은 이것을 두고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인턴 직원을 더 뽑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 즉 잡 셰어링’이라고 불렀다. 며칠 만에 공기업, 금융기관 등이 삭감률을 더 높여 동참했다. 이명박과 전경련의 ‘잡 셰어링’은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신입사원 임금 3분의 1을 글자 그대로 ‘강탈’한 사기극이었다. 본래 잡 셰어링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의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단축해 줄어든 임금을 감수하는 대신 다른 노동자가 일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노사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반면 임금을 일방 삭감해 그 돈으로 직원을, 그것도 비정규직을 뽑는 것은 ‘잡 스플리팅’(일자리 쪼개기)이라 불린다. 보통 우리는 그런 짓을 이렇게 부른다. 협잡. 이 협잡이 더 구역질 났던 이유는 “국가적 위기”의 고통분담을 청년에게 강요한 기업 임원들이 자기 월급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였으면 청와대와 전경련이 불에 타 사라졌을 사건이지만 놀랍게도 당시 청년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사회적 논의 과정 없이 한 세대가 일방적으로 희생양이 됐음에도, 결정에 관여한 누구도 당시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2019년으로 돌아와 지금 문재인 정권을 보자.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죽어간 목숨들, 그들의 처절한 투쟁 과정과 삼성의 악마적 행태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청와대와 민주당처럼 ‘화학물질 안전관리 완화’라는 말, 쉽게 할 수 없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불화수소, 일명 불산이라 불리는 물질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재료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기에 매우 높은 수준의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은 한명이 숨지고 네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였음에도 삼성은 작업자를 대피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발각됐다. 이런 부도덕한 기업이 규제를 완화하면 무슨 짓을 할까. 청와대와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지금 저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이렇게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협잡. 그것도 노동자의 목숨을 제물 삼아 재벌에게 당근을 던져주려는, 최악의 협잡. 세계 최장 노동시간의 ‘과로사 공화국’에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는 것도 협잡이긴 마찬가지다. 격차가 줄긴 했지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3배가 훌쩍 넘는다. 불매운동, 여행 안 가기 등이 일본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절망할 수만은 없다. 아베 정권의 부당한 횡포에 끈질기게 맞서 싸워야 한다. ‘민족의 자존심’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다. ‘역사는 덮어두고 경제부터 챙기자’는 현실주의가 국제질서의 변화와 맞물려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베 정권과의 싸움이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강제징용이라는 대규모 반인권 범죄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대통령과 수석이 큰소리는 치고 있지만 당장 꺼내들 카드가 변변찮다는 것을. 우리 힘이 약해 한동안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의 편에 서는 한, 많은 시민들이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적을 핑계로 노동자를 번제물로 바치지는 말라. 일본을 이기는 것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시민 개개인의 삶이다. 뭣이 중요한지 잊지 말기 바란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촛불을 들었던 주권자들의 경고다.
칼럼 |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아베 치랬더니 노동자 치는 정권 |
사회비평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반도체 재료 수출규제 대책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완화’를 추진하면서 관련 노동자의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조치가 잇따른다. 이걸 보니 10년 전 ‘그 사건’이 또 떠올랐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다며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었다. 2차 회의의 ‘대통령 말씀’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잡 셰어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강구하라”였다. 지시가 구체화된 건 한달 뒤인 2월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고용안정을 위한 재계 대책회의’였다. 거기서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28% 삭감한다.” 그들은 이것을 두고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인턴 직원을 더 뽑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 즉 잡 셰어링’이라고 불렀다. 며칠 만에 공기업, 금융기관 등이 삭감률을 더 높여 동참했다. 이명박과 전경련의 ‘잡 셰어링’은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신입사원 임금 3분의 1을 글자 그대로 ‘강탈’한 사기극이었다. 본래 잡 셰어링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의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단축해 줄어든 임금을 감수하는 대신 다른 노동자가 일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노사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반면 임금을 일방 삭감해 그 돈으로 직원을, 그것도 비정규직을 뽑는 것은 ‘잡 스플리팅’(일자리 쪼개기)이라 불린다. 보통 우리는 그런 짓을 이렇게 부른다. 협잡. 이 협잡이 더 구역질 났던 이유는 “국가적 위기”의 고통분담을 청년에게 강요한 기업 임원들이 자기 월급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였으면 청와대와 전경련이 불에 타 사라졌을 사건이지만 놀랍게도 당시 청년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사회적 논의 과정 없이 한 세대가 일방적으로 희생양이 됐음에도, 결정에 관여한 누구도 당시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2019년으로 돌아와 지금 문재인 정권을 보자.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죽어간 목숨들, 그들의 처절한 투쟁 과정과 삼성의 악마적 행태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청와대와 민주당처럼 ‘화학물질 안전관리 완화’라는 말, 쉽게 할 수 없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불화수소, 일명 불산이라 불리는 물질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재료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기에 매우 높은 수준의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은 한명이 숨지고 네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였음에도 삼성은 작업자를 대피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발각됐다. 이런 부도덕한 기업이 규제를 완화하면 무슨 짓을 할까. 청와대와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지금 저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이렇게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협잡. 그것도 노동자의 목숨을 제물 삼아 재벌에게 당근을 던져주려는, 최악의 협잡. 세계 최장 노동시간의 ‘과로사 공화국’에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는 것도 협잡이긴 마찬가지다. 격차가 줄긴 했지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3배가 훌쩍 넘는다. 불매운동, 여행 안 가기 등이 일본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절망할 수만은 없다. 아베 정권의 부당한 횡포에 끈질기게 맞서 싸워야 한다. ‘민족의 자존심’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다. ‘역사는 덮어두고 경제부터 챙기자’는 현실주의가 국제질서의 변화와 맞물려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베 정권과의 싸움이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강제징용이라는 대규모 반인권 범죄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대통령과 수석이 큰소리는 치고 있지만 당장 꺼내들 카드가 변변찮다는 것을. 우리 힘이 약해 한동안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의 편에 서는 한, 많은 시민들이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적을 핑계로 노동자를 번제물로 바치지는 말라. 일본을 이기는 것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시민 개개인의 삶이다. 뭣이 중요한지 잊지 말기 바란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촛불을 들었던 주권자들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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