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 나는 독도가 있는 경상북도민이다. 동해 건너편에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는 일본 시마네현이 있다. 경상북도와 시마네현의 청소년들이 정기적인 한·일 평화캠프를 통해 서로 간의 이해와 평화 감수성을 높이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나는 2009년에 일본 친구들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2018년에 임진왜란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이 묻힌 오사카 귀 무덤을 참배했다.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참회하는 우리들 앞에서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서대문형무소와 오사카 귀 무덤을 함께 참배할 수 있는 일본 친구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한-일 평화, 동아시아 평화의 길임을 절실히 느꼈다. 친일과 반일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열어가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생각의 차이로 칼부림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1600년대 유럽에선 교회파와 성당파가 30년 전쟁을 했다. 민중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한반도를 위해 수백만명이 죽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70년이 채 안 되었다. 근대의 시작으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고, 시민종교인 ‘민주주의’가 공통 규범으로 확산되지만 국가 내부에 머물렀다. 두차례 세계대전 이후, 복잡한 국제관계와 정치·경제 질서하에 민족과 국가의 칸막이를 넘어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평화를 실천하는 쉽지만 어려운 길은, 생각의 차이가 칼부림으로 이어지지 않게 사회적·지구적 조건을 만들고, 이러한 조건을 만드는 주요 행위자끼리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같은 길을 간다면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는 한국인들은 정부에 반대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한국인을 대표할 수 없듯이 아베 신조 총리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쟁 도발을 경계하면서 전쟁 가능성 자체를 줄이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 반일 감정의 열기가 너무나도 뜨겁다. 조금은 다른 상상력이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내년 총선이 한-일전이라는 식의, 친일은 자유한국당, 반일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구도는 실제 문제 해결은 물론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일본 평화세력과의 연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과의 갈등 국면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종북’으로 몰렸다. ‘종북’과 ‘친일’ 구호만으로 북한과 일본의 군국주의를 개선할 수는 없다. 고 노회찬 의원은 외계인이 오면 한국과 일본도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외계인이란 우리가 지금껏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위기다. 특정한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 본질은 아니다. 누군가를 없앤다고 해결될 수 없다. 전쟁 위험, 기후 위기, 핵폐기물, 비정규 노동, 차별과 혐오와 같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외계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는다. 애국도, 반일도 아닌 민족주의의 광기인 일본 출신 연예인 퇴출 운동보다 일본 오키나와 동아시아 평화기행을 가는 대학생들이 평화의 특사다.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노력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인류의 역사다. 1920년대 독일 정치권과 서구 열강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노동자들의 갈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히틀러와 나치즘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장 어려운 길이 가장 현명한 길일 수 있다. 그게 정치다.
칼럼 |
[2030 리스펙트] 외계인에 맞서는 한-일 연대 / 허승규 |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 나는 독도가 있는 경상북도민이다. 동해 건너편에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는 일본 시마네현이 있다. 경상북도와 시마네현의 청소년들이 정기적인 한·일 평화캠프를 통해 서로 간의 이해와 평화 감수성을 높이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나는 2009년에 일본 친구들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2018년에 임진왜란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이 묻힌 오사카 귀 무덤을 참배했다.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참회하는 우리들 앞에서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서대문형무소와 오사카 귀 무덤을 함께 참배할 수 있는 일본 친구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한-일 평화, 동아시아 평화의 길임을 절실히 느꼈다. 친일과 반일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열어가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생각의 차이로 칼부림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1600년대 유럽에선 교회파와 성당파가 30년 전쟁을 했다. 민중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한반도를 위해 수백만명이 죽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70년이 채 안 되었다. 근대의 시작으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고, 시민종교인 ‘민주주의’가 공통 규범으로 확산되지만 국가 내부에 머물렀다. 두차례 세계대전 이후, 복잡한 국제관계와 정치·경제 질서하에 민족과 국가의 칸막이를 넘어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평화를 실천하는 쉽지만 어려운 길은, 생각의 차이가 칼부림으로 이어지지 않게 사회적·지구적 조건을 만들고, 이러한 조건을 만드는 주요 행위자끼리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같은 길을 간다면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는 한국인들은 정부에 반대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한국인을 대표할 수 없듯이 아베 신조 총리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쟁 도발을 경계하면서 전쟁 가능성 자체를 줄이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 반일 감정의 열기가 너무나도 뜨겁다. 조금은 다른 상상력이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내년 총선이 한-일전이라는 식의, 친일은 자유한국당, 반일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구도는 실제 문제 해결은 물론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일본 평화세력과의 연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과의 갈등 국면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종북’으로 몰렸다. ‘종북’과 ‘친일’ 구호만으로 북한과 일본의 군국주의를 개선할 수는 없다. 고 노회찬 의원은 외계인이 오면 한국과 일본도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외계인이란 우리가 지금껏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위기다. 특정한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 본질은 아니다. 누군가를 없앤다고 해결될 수 없다. 전쟁 위험, 기후 위기, 핵폐기물, 비정규 노동, 차별과 혐오와 같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외계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는다. 애국도, 반일도 아닌 민족주의의 광기인 일본 출신 연예인 퇴출 운동보다 일본 오키나와 동아시아 평화기행을 가는 대학생들이 평화의 특사다.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노력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인류의 역사다. 1920년대 독일 정치권과 서구 열강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노동자들의 갈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히틀러와 나치즘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장 어려운 길이 가장 현명한 길일 수 있다. 그게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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