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카데미 이사·전 MBC 논설위원 큰판이 벌어졌다. 그동안 일본이 매해 이겨온 바둑판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의 대국에서 이겨 실점을 만회해왔다. 올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일본이 예상 밖의 수를 들고나왔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라는 대마를 잡겠다고 초강수를 놓았다. 일본의 기성(碁聖) 아베 총리에 맞서 한국의 국수(國手)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대응 수를 놓지 않았다. 바둑판에서는 판세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대응하는 수가 달라진다. 검토실과 훈수꾼들의 판세읽기는 대부분 경제라는 잣대에 맞춰져 있다. ‘꼼꼼하고 치밀한 일본이 자국의 피해와 국제 여론까지 계산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정치문화라는 잣대로 판세를 읽어보면, 억지 수를 놓는 아베 총리의 본심이 더 잘 보일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원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 정부의 항복이라고 봐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탈아입구,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 서유럽 수준으로 들어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나라이다. 경제는 물론 문화와 과학 분야에서도 그 수준 이상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내심으론 찜찜한 구석도 남아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문화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촛불혁명이 벌어질 때, 일본 사람들은 놀랐다고 한다. 수십만명이 매주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모이는 문화, 별다른 충돌도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치는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불과 몇백명이 모이는 반정부 시위조차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십년 동안 민초들이 대가를 치르면서 이뤄낸 결과라는 점을 일본의 지식인들도 인정한다. 여야 간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잣대로 재어보면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등’이라고 일본의 법조인들도 인정한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디제이(DJ)가 당선됐을 때, 한국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냈을 때, 일본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 뒤 일본에서 잠시나마 여야 정권교체가 있었던 것도 한국의 영향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촛불혁명은 탄핵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 영향으로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또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아베 총리는 우려하는 걸로 보인다. 6년을 넘긴 그의 장기 집권에서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읽어낼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해법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한국 정부를 흔들어서, 그 정부가 아베 정권의 턱없는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을 일본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번 충돌을 참의원 선거를 눈앞에 두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읽힌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를 두라’고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뒤에도 또 다른 엉뚱한 수를 꺼내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계속 압박할 태세다. 그의 입장에서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개헌 작업이 탄력을 받으려면 이웃 한국의 1등 민주정부가 일본에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바둑에서 실력 차이가 크면 꼼수를 놓고 상대를 흔들 수 있다. 반대로 상대의 기력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아베의 꼼수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서두르다가는 덜컥 수를 놓기 쉽다. 미봉책을 쓸 때도 아닌 것 같다. 일본이 원칙을 놓고 다투겠다면, 우리도 좀 힘들지라도 원칙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 아시아 1등인 대한민국의 민주정부에 억지 시비를 걸고 있다. 우리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왜냐면 |
[왜냐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 / 김종화 |
MBC 아카데미 이사·전 MBC 논설위원 큰판이 벌어졌다. 그동안 일본이 매해 이겨온 바둑판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의 대국에서 이겨 실점을 만회해왔다. 올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일본이 예상 밖의 수를 들고나왔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라는 대마를 잡겠다고 초강수를 놓았다. 일본의 기성(碁聖) 아베 총리에 맞서 한국의 국수(國手)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대응 수를 놓지 않았다. 바둑판에서는 판세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대응하는 수가 달라진다. 검토실과 훈수꾼들의 판세읽기는 대부분 경제라는 잣대에 맞춰져 있다. ‘꼼꼼하고 치밀한 일본이 자국의 피해와 국제 여론까지 계산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정치문화라는 잣대로 판세를 읽어보면, 억지 수를 놓는 아베 총리의 본심이 더 잘 보일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원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 정부의 항복이라고 봐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탈아입구,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 서유럽 수준으로 들어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나라이다. 경제는 물론 문화와 과학 분야에서도 그 수준 이상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내심으론 찜찜한 구석도 남아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문화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촛불혁명이 벌어질 때, 일본 사람들은 놀랐다고 한다. 수십만명이 매주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모이는 문화, 별다른 충돌도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치는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불과 몇백명이 모이는 반정부 시위조차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십년 동안 민초들이 대가를 치르면서 이뤄낸 결과라는 점을 일본의 지식인들도 인정한다. 여야 간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잣대로 재어보면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등’이라고 일본의 법조인들도 인정한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디제이(DJ)가 당선됐을 때, 한국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냈을 때, 일본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 뒤 일본에서 잠시나마 여야 정권교체가 있었던 것도 한국의 영향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촛불혁명은 탄핵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 영향으로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또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아베 총리는 우려하는 걸로 보인다. 6년을 넘긴 그의 장기 집권에서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읽어낼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해법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한국 정부를 흔들어서, 그 정부가 아베 정권의 턱없는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을 일본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번 충돌을 참의원 선거를 눈앞에 두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읽힌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를 두라’고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뒤에도 또 다른 엉뚱한 수를 꺼내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계속 압박할 태세다. 그의 입장에서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개헌 작업이 탄력을 받으려면 이웃 한국의 1등 민주정부가 일본에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바둑에서 실력 차이가 크면 꼼수를 놓고 상대를 흔들 수 있다. 반대로 상대의 기력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아베의 꼼수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서두르다가는 덜컥 수를 놓기 쉽다. 미봉책을 쓸 때도 아닌 것 같다. 일본이 원칙을 놓고 다투겠다면, 우리도 좀 힘들지라도 원칙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 아시아 1등인 대한민국의 민주정부에 억지 시비를 걸고 있다. 우리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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