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차관보 지난주 타이 방콕에서 아세안이 주관한 5개의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한일 무역갈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우리가 직접 관련된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개최되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됐다. 우리 대표단은 절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개의 외교장관회의 외에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 일본·중국을 포함한 10개 주요국과 개별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해 한일 관계 해법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일본의 완고한 태도와 양국 간 극명한 견해차로 인해 한일 현안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작정하고 나왔다. 지난 2일 일본 각의 결정 이전에는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마련해보려고 전력을 다했다. 강 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대신과의 회담에서 현 상황 타개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각의 결정 중단을 촉구하고 후폭풍을 경고하는 한편 물밑 노력도 병행했다. 그러나 일본은 차가웠다. 정해진 입장만 반복했다. 일본 각의 결정 발표 이후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일본의 경직된 입장에 부딪혀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미국이 우리와 상황인식을 공유하고 가능한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한일 외교수장 간 대립은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다자무대로 이어졌다. 우리는 일방적인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자유무역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자국의 조치가 수출규제와는 무관하며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맞섰다. 한일 외교수장은 각자 추가 발언권을 신청하며 설전을 이어갔다. 아세안은 비동맹주의가 발원한 곳이자 한일 양국의 이웃이다. 그만큼 대놓고 시시비비를 가려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참석 국가들은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화이트리스트의 대상은 줄일 것이 아니라 늘려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의장국 타이의 돈 외교장관은 인근 궁핍화 전략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국 입장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역내 국가들 간 무역갈등에 대한 우려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아세안의 입장은 5개 외교장관회의 결과 문서에도 반영됐다. 이번 외교현장에서 한국의 주장이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일 무역분쟁에 대한 해결의 단초는 마련하지 못했으나 지역 국가들의 분명한 입장표명은 앞으로 일본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외교도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한반도 문제는 예년과 같이 지역 국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참석 국가들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여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최근 북-미 간 대화 재개 분위기를 환영하면서도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드러냈다.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회의 불참이 국제사회의 우려 목소리를 키우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프로세스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 수립을 위해 열렸던 빈 회의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회의 중심의 다자외교는 공허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아세안 다자외교의 이면은 뜨거운 외교열전의 장이었다. 수많은 국제사회의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회의 성과를 설명할 수 있으려면 치밀한 논리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이나 남중국해를 두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어느 지역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은 나라다. 그만큼 분명한 외교적 원군이 없다는 반증이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통로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지역협의체는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유용한 외교무대가 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공동번영을 선도하는 한국 외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왜냐면 |
[왜냐면] 아세안 외교장관회의가 남긴 과제 / 윤순구 |
외교부 차관보 지난주 타이 방콕에서 아세안이 주관한 5개의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한일 무역갈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우리가 직접 관련된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개최되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됐다. 우리 대표단은 절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개의 외교장관회의 외에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 일본·중국을 포함한 10개 주요국과 개별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해 한일 관계 해법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일본의 완고한 태도와 양국 간 극명한 견해차로 인해 한일 현안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작정하고 나왔다. 지난 2일 일본 각의 결정 이전에는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마련해보려고 전력을 다했다. 강 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대신과의 회담에서 현 상황 타개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각의 결정 중단을 촉구하고 후폭풍을 경고하는 한편 물밑 노력도 병행했다. 그러나 일본은 차가웠다. 정해진 입장만 반복했다. 일본 각의 결정 발표 이후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일본의 경직된 입장에 부딪혀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미국이 우리와 상황인식을 공유하고 가능한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한일 외교수장 간 대립은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다자무대로 이어졌다. 우리는 일방적인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자유무역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자국의 조치가 수출규제와는 무관하며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맞섰다. 한일 외교수장은 각자 추가 발언권을 신청하며 설전을 이어갔다. 아세안은 비동맹주의가 발원한 곳이자 한일 양국의 이웃이다. 그만큼 대놓고 시시비비를 가려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참석 국가들은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화이트리스트의 대상은 줄일 것이 아니라 늘려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의장국 타이의 돈 외교장관은 인근 궁핍화 전략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국 입장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역내 국가들 간 무역갈등에 대한 우려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아세안의 입장은 5개 외교장관회의 결과 문서에도 반영됐다. 이번 외교현장에서 한국의 주장이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일 무역분쟁에 대한 해결의 단초는 마련하지 못했으나 지역 국가들의 분명한 입장표명은 앞으로 일본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외교도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한반도 문제는 예년과 같이 지역 국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참석 국가들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여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최근 북-미 간 대화 재개 분위기를 환영하면서도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드러냈다.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회의 불참이 국제사회의 우려 목소리를 키우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프로세스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 수립을 위해 열렸던 빈 회의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회의 중심의 다자외교는 공허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아세안 다자외교의 이면은 뜨거운 외교열전의 장이었다. 수많은 국제사회의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회의 성과를 설명할 수 있으려면 치밀한 논리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이나 남중국해를 두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어느 지역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은 나라다. 그만큼 분명한 외교적 원군이 없다는 반증이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통로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지역협의체는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유용한 외교무대가 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공동번영을 선도하는 한국 외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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