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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7 17:04 수정 : 2019.08.07 19:25

이병욱
건국대 기계공학과 교수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에서 시작되어 전략물자심사우대국(백색국가) 배제까지 확산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외교정책은 1965년 한일협정 논란 및 대법원 판결과 결부돼, 한국인의 감정을 격앙시키고 있다. 불편한 진실과 굴욕적 역사, 이에 바탕을 둔 국민적 분노가 반복되는 수레바퀴를 보면서, 이제야말로 그 굴레를 끊고 어떻게 한국을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내총생산(GDP) 1조6천억달러의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됐나? 또한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은 어떻게 강대국이 됐나? 과거 성장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공통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국가 최우선으로 삼고, 과학기술 인재를 배양하고, 과학기술 첨단산업을 보호 육성할 때, 국가의 힘이 강화됐다. 특히 대한민국 고도성장기를 돌이켜 보면, 과학기술에 온 국력과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과학기술연구소들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등 글로벌 과학기술 기반 기업들이 이런 국민적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강화된 국력은 막강한 국방력 증강으로 이어졌다. 2019년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화웨이 이슈, 이번 일본산 수입소재 논란에서 보듯이, 현재 지구촌은 과학기술 강국이 강한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 우리 정책당국의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산업에 대한 태도는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공계 병역특례를 폐지해 과학기술 인재풀을 스스로 줄이겠다는 정책이 언론을 오르내렸고, 원로급 과학기술자들의 연구 의욕을 꺾는 일도 있었다. 탈원전을 정책 목표로 세울 수는 있으나, 해당 기술을 60년 넘게 개발한 원자력 연구자들과 업계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산업을 국가의 보배로 삼던 과거 정부들과는 사뭇 달랐다.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외교적인 해결과 별도로 기술적으로도 하나하나 극복할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고난이도 기술 문제를 해결해내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자들이, 1천억달러 수출을 해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집결해 있고, 지난 60여년간 우리가 쌓아온 과학기술산업계 토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결에도 조건이 있다. 과학산업을 마치 돈만 넣으면 기술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자판기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정책 인식에서 정부가 벗어나야 한다.

한개의 글로벌 과학기술제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일선 기술자의 피와 땀, 눈물은 기본이고 거기에 핵심 개발자의 천재성과 창의성이 결합되어야 한다. 정해진 사건을 파헤치는 법률가나 인간 행동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과학기술 실험분야에 30년을 바쳐온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올해 현재 약 6천억달러의 수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수입소재 단 세가지에 기둥산업이 흔들리고, 일본의 전략물자우대 규제에 경제위기를 논해야 하는 상황은, 4차산업에 들떠 있던 우리의 과학기술산업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그 국가적 중요성이 높음을 깨닫게 해준다.

영국 50파운드 지폐 모델로 20세기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을 선정했다는 뉴스는 뉴턴, 패러데이, 플레밍과 호킹이 왜 영국에서 나왔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지구촌은 과학기술산업 전쟁 중이다. 이번 외교 문제로 과학산업 일선 현장 기술자들의 어깨의 무게가 어떨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21세기에 국가를 지키는 것은 결코 용기와 열정, 애국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기본적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 국가예산 집행당국에 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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