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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8 18:23 수정 : 2019.08.08 19:14

지금 강남 한복판, 만 60살의 김용희씨는 한 평도 안 되는 철탑 위에서 60일 넘게 농성하고 있다. 노조를 결성하려다 삼성재벌의 잔혹한 탄압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가 소멸하도록 놔둔 채 일본 전범기업에 강제동원된 조선 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려는 것인가.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자.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아니라 관제 민족주의의 함정이다. 가속페달만 있을 뿐 브레이크가 없는 관제 민족주의의 함정 속으로 미친 듯 뛰어들고 있다. 도쿄를 여행금지구역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150명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일본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당장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파기하길 주문한다”며 굳이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에 통지서를 보내자고 한다. 횟집 스시가 공격의 빌미가 되고 사케냐 국산 청주냐로 다투는 한국 정치의 수준은, 내년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겠다는 여당에서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한 민족주의와 다른 민족주의는 적대적 공존관계를 이룬다. 한목소리로 아베를 규탄하지만 대부분 아베를 돕고 있다. 박근혜를 물리친 주체가 한국의 시민이었듯이, 아베를 물리칠 주체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시민이다. 일본 시민들과 척지는 대신 연대할 길을 모색하고 실천할 일이다.

가속페달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는 민족주의는 핸들도 마구잡이로 틀기 쉽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일 일본의 무역 도발에 대한 돌파구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제기했다.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규모와 내수시장입니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평화경제’라는 말에 낯설어할 나 같은 국민을 위해서였을까,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미래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갈 때 비핵화와 함께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앞에 잠시 북한 땅을 지나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는 철마의 모습과 함께 장밋빛 전망이 그려지는 듯했으나, 금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조급하거나 강박적인 목적의식은 합리적 사유 과정을 배제하거나 왜곡한다. 나의 얕은 경제지식은 경제의 관건이 규모나 내수시장의 크기가 아닌 생산성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쇼비니즘 민족주의에 젖어 있는 비서진에게서 나왔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황된 발상과(“세계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미래라는 확신을 가지고…”) 경제에 관한 기본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내용이 대통령의 공식 발언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오롯이 남는다. 그런데 과문의 탓인지, 아니면 모두 “열두 척의 배” “죽창가” “의병”으로 표상되는 관제 민족주의에 줄을 선 탓인지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청와대 권부의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어빙 재니스의 ‘집단사고’ 개념을 참조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다. 집단사고는 낙관론에 집단의 눈을 멀게 하는 현상으로 외부를 향해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게 한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습을 게을리하여 실력이 부족하면서도 지적 우월감, 윤리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민주건달’이 되지 않을 것을 자경문의 하나로 삼고 있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은 지난했다. 길고 지난했던 민주화운동 대열의 일원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이른바 ‘86세대’의 대부분은 윤리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반민주적 독재체제이며 매판적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운 당사자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은 선배의 권유로 몇권의 이념서적을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로써 지적 우월감도 갖기 쉽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이다. 지적 우월감과 윤리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민족주의자에게서 자기성찰이나 ‘회의하는 자아’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 나침반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방향을 지시하기 전에 바르르 바늘을 떨지만, 이들에게선 그런 면을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분단 상황은 시민사회운동의 모든 장에서 민족주의세력에게 다수파를 형성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도록 작용했다. 그들의 대척점에 있는 <조선일보>나 자유한국당의 조악한 담론 수준은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했다. 상호 간 토론하고 설득하는 관계가 아니라 힘으로 제압하거나 제압당하는 관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촛불에 힘입어 기적처럼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이들 중 적잖은 현실정치 예비군에게 공공부문의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겼다. 정서적으로 끈끈히 연결돼 있는 이들 사이에도 일종의 “우리가 남이가!”의 문화가 있다. 나는 공교육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걸 목도하면서 이들의 집권 목표가 정치철학의 실현에 있기보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양정철씨는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장이 되었는데, 이 여당 싱크탱크의 연구 역량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한-일 갈등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뿐이다.

실력이 부족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한다. 정신승리를 위해서일까, 상대적으로 필적할 만하다고 보여서일까, 지금 관철되는 관제 민족주의는 미국에 대한 자발적 복종에 비추어볼 때 지극히 선택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아베 정권의 경제도발 가능성을 8개월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외교력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집중하면서 이를 무시했다. 정부는 한-일 관계의 위기 대응에 소홀했던 과오를 인정하고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하여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일의 정신승리는 잠깐이고 경제 쓰나미가 민생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할퀼 수 있다. 멈춰야 한다. 민주당 어느 최고위원의 말처럼 “이 땅에 친일정권을 세우겠다는 일본의 정치적 야욕”이 실현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적 매판세력보다는 그래도 현 집권세력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미 흔들리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노동존중 사회가 완전히 물 건너가선 안 되기 때문이며, 국민연금을 탈취한 삼성재벌의 이재용이 극일경제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강남 한복판, 만 60살의 김용희씨는 한 평도 안 되는 철탑 위에서 60일 넘게 농성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삼성재벌의 잔혹한 탄압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가 소멸하도록 놔둔 채 일본 전범기업에 강제동원된 조선 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려는 것인가.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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