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1 18:31
수정 : 2019.08.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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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 규탄 4차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판하는 손팻말과 촛불을 들어 보이고 있다. ♣H6s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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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4돌 기획
1997년 신일본제철
법정선 “관계 없다” 주장하면서도
법정밖 교섭···위로금·위령제
1999년 일본 강관
소송 8년···법적 책임 거부했지만
“진지한 마음 표한다” 법정화해
2000년 후지코시
일 법원 “법원 강제” 인정하자
피해자들에 3천만엔 지급
2000년부터 달라져
미국서 ‘반인류범죄 소송’ 번지자
“청구권협정으로 해결” 본격 주장
광복을 코앞에 둔 1945년 여름. 일본 이와테현에 있는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에 연합국의 함포사격이 쏟아졌다. 이로 인해 강제연행돼 이 제철소에서 휴일 없이 주야 2교대 노동으로 혹사당하던 최소 690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 가운데 25명이 숨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일본제철은 사망자 유골은 물론 사망 통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도망을 막기 위해 강제로 저축하도록 했던 미지급 임금도 잊혔다. 하지만 1974년 노동자 미지급 임금을 정리한 서류철이 일본 도쿄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1995년 9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1명은 일본제철(당시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 유골 반환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냈다.
일본제철은 법정에서는 ‘옛 일본제철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법정 밖에서는 교섭 통로를 열어놨다. 직원을 가마이시에 파견 조사 보냈고 양쪽 변호인단이 생존자 증언을 수집했다. 유족들은 소송에서 졌지만, 1997년 9월 ‘화해’가 성립됐다. 당시 일본제철은 조선인 피해자가 가마이시에서 숨진 뒤 유골이 반환되지 않았고 위령사업에서도 배제된 사실을 인정하면서 위로금으로 1인당 200만엔을 지급했다. 유족들을 일본으로 불러 위령제도 열었다. 현재 일본 정부 뒤에 숨어 배상을 거부하는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은 한국 법원에 앞서 1990년대 일본 법원에서 먼저 진행됐다. 가해 당사자인 일본에 먼저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대부분 소송에서 졌지만, 1997~2000년 사이 세 건의 ‘화해’가 이뤄졌다.
1942~1944년 김경석씨는 일본강관 가와사키 공장에서 강제노역했다. 10대 후반에 공장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한 김씨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오래 후유증을 앓았다. 그는 1991년 3월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강관을 상대로 배상금 1000만엔과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일본강관은 법적 책임을 끝내 거부했지만 김씨가 공장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해 오랫동안 장애를 안고 살아온 데 대해 “진지한 마음을 표한다”며 소송 제기 8년 만인 1999년 위로금 410만엔을 전달했다. 도쿄고등재판소에서 이뤄진 최초의 ‘법정 화해’다.
현재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 중인 후지코시도 의외의 이력이 있다. 1992년 9월 한국 여자근로정신대원들이 낸 소송에서 도야마지방재판소는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학교에 갈 수 있다’며 소녀들을 속인 것은 불법적인 강제동원이라고 판단했다. 일본 법원의 전범기업 인정에 이어, 미국에서 집단소송 움직임이 일자 후지코시는 2000년 7월 피해자들에게 약 3천만엔을 지급하고 화해했다.
위로금 지급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20여년 전과 달리 현재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에 동조하며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자국민이 아니어도 반인륜범죄 재판이 가능한 미국 법원으로 소송이 확대된 2000년을 변화의 시작점으로 본다. 미국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소송전을 시작하자, 긴장한 일본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새로운 대응 논리를 본격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일부 기업은 과거 과오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했고, 이는 해석에 따라 배상으로서의 성격도 있다. 일본 쪽이 현재 상황에 대해 과민반응할 필요 없이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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