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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3 11:19 수정 : 2019.08.13 13:14

그래픽_고윤결

‘일 화이트국가 배제’ 결정 의미

사실상 ‘의지’ 표명에 방점
정부 “WTO 제소 영향 없다”

추가카드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
관광·식품 분야도 ‘테이블 위에’

그래픽_고윤결
한국과 일본이 ‘강대강 대치’로 빨려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도 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간소화 대상국)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에 주춤한 일본에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동시에,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을 열어둔 강온 양면 전략으로 풀이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또다른 ‘대응 카드’ 역시 언제든 꺼내들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12일 발표한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에 따른 ‘상응 조처’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제 수출통제 체제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운영 사례가 지속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 공조가 어렵다”고만 개정 이유를 밝혔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국제 수출통제 체제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한 것”이라며 “일본에 맞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의 제도를 미세 조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고시 개정이 상응 조처, 즉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재보복’으로 여겨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보복 성격의 무역제재 조처를 금지하고 있고, 한국은 이런 규범을 근거로 일본에 대한 제소를 준비 중이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국내법과 국제법 틀 안에서 적법하게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라 향후 세계무역기구 제소 등에서 생길 (부정적) 영향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바세나르 협정 등 4대 국제체제에 가입했어도 실제로는 국제체제 원칙에 맞지 않게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가 있어 고시를 개정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설명’을 하고 있다. 박 실장은 정상적인 민간 거래는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국가 간 정보 교환을 하도록 권고한 국제체제 조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실제 제도 운용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한 경우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가 지역’→‘가의2’ 지역)되는 4대 체제 가입국으로 설명했다.

이에 비춰보면 일본이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돌연 ‘개별허가’만 내주기로 함으로써 국내외 반도체 산업을 통째로 위험에 빠뜨렸다는 점, 일본이 한국과 전략물자 수출입 관련 국장급 협의를 하지 않으려 하는 점, 일본에서 수출된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갔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점 등이 한국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이유가 된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일본을 ‘전략물자 통제 불량국’으로 지칭하며 “유엔 보고서에 일본에서 유출된 전략물자들이 무기로 사용되거나, 그에 준하는 중요한 분야에 쓰인 내용이 나와 있다”고 했다.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성 장관은 “20일간 의견수렴 등 절차를 거쳐 9월 중 개정 고시가 시행될 것”이라며 “의견수렴 기간 중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언제 어디서건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의견수렴 기한에 앞서 지소미아 연장 시한(24일)이 다가오고, 그로부터 나흘 뒤인 28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된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일본은 지소미아 연장을 원하고 있어 우리의 선택만 남았다”며 “어떤 선택이 국익에 합당한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칼집 속의 칼’처럼 남겨두고 있는 모습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공언한 바 있는 일본에 대한 관광·식품·폐기물 분야에서의 규제 강화 조처도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환경부는 이달 8일 일본산 석탄재에 대한 방사능 점검 절차 강화 발표로 맞대응 신호탄을 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금 상황을 경제학의 게임 이론에 비유하면 전략 게임이자 반복 게임”이라며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내 전략을 변경하는 것이고, 그것을 여러번 반복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상황 변화에 따라 대응 전략과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뜻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다각도의 카드를 언제든 적절히 활성화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최하얀 이완 성연철 유강문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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