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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7 15:36 수정 : 2019.08.27 20:09

반도체 중소기업 웨이퍼마스터스 유우식 대표와 김정곤 박사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웨이퍼마스터스’가 본 반도체 중기의 그늘
“매출 따라 장비 설계·예산 따려 거짓말”

형체 없는 연구소 내세우고 ‘평가 조작’도
대학은 학술 성과만 중시…현장 못 따라가

산업-대학 괴리 ‘현장 중심 연구’로 풀어야

반도체 중소기업 웨이퍼마스터스 유우식 대표와 김정곤 박사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술력보다 영업과 실적주의가 늘 먼저였다.”

27일 <한겨레>와 만난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 대표는 반도체 업계 관행을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반도체 산업을 두루 경험한 유 대표가 대기업 연구직과 교수직을 버리고 기술창업을 택한 이유다.

“장비 회사 매출의 25%을 유지보수비용으로 채우려고 하더라고요. 일부러 제품 완성도를 80% 수준으로 맞춰서 1년에 한두차례 고장 나게 만들고요. 단지 더 비싸다는 이유로 고객과 안 맞는 장비를 추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유 대표가 미국 굴지의 장비업체 노벨러스시스템즈와 램리서치에 몸 담았을 때 겪은 일이다. 입맛대로 장비를 파는 영업팀, 매출에 맞춰 장비를 설계하는 기술팀과 싸우는 게 하루 일과였다.

미국의 소재업체 에이티엠아이(ATMI)를 다닐 땐 국책과제 선정에 필요한 연구계획서를 쓰기 바빴다. 유 대표는 “명분상으론 실리콘카바이드 연구 총책임이었는데 실제론 계획서 쓰고 윗사람들 도장 받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며 “반도체는 고품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당장 연구비 몇만달러에 급급해서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고 했다.

반도체 중소기업 웨이퍼마스터스 유우식 대표와 김정곤 박사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웨이퍼마스터스에서 장비 분석·평가를 맡은 김정곤 기술부장(박사)도 반도체 업계의 그늘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2015년 라만 분광법으로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연구원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한국 대학들은 네이처 등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핵심 논문을 게재했는지, 논문 재인용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집중했다. 김 박사는 “국제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이 있긴 했지만 내용보다 학술지 명성을 더 중시했다”고 했다. 어렵게 자리 잡은 중소기업 연구소는 정부 연구 과제로 연명하기 바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주제를 골라 밤낮 계획서를 써 냈다. 국책과제를 따려고 창고 주소를 연구소로 꾸미는 기업들도 있었다. 화려하게 쓴 계획서는 무난히 심사를 통과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안겼다.

대학이 산업현장에서 멀어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대기업이 첨단기술을 이끄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괴리가 더 컸다. 유 대표는 “과거엔 대학이 작게나마 기초연구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업들이 연구소 끼고 신제품을 만드니 따라가지를 못한다”며 “당장 연구는 해야겠고 주제는 마땅치 않으니 산업현장의 고민보다 학술적 주제에 치중한다”고 했다. 채용을 위해 만난 대학원생들도 ‘졸업에 도움이 되는지’,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따져 물었다.

업계 관행대로 가지 않으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장비 실험과 논문 작성을 하나로 묶었다. 고객사의 질의사항이나 직원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틈틈이 실험한 뒤 결과물을 기록으로 남겼다. 유 대표는 “자사 기술력을 입증하는 증거도 되고 논문을 본 고객사들이 연락도 해 온다”고 했다. 유 대표가 웨이퍼마스터스를 창립한 이래 국제 반도체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은 400편이 넘는다. 이 가운데 고체 소재·소자 국제학술대회(SSDM) 학술상을 받은 논문도 있다.

투자 자금도 대부분 기술 개발비로 사용했다. 일본 투자전문기업에게서 받은 투자금 70억원과 도쿄일렉트론(TEL)에게서 받은 배상금 300억원도 인건비와 연구개발비에 쏟아부었다. 웨이퍼마스터스는 지난 2004년 장비 제작을 의뢰한 도쿄일렉트론이 납품 직전 계약을 파기하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고 전부 승소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선 정부 정책에 대해선 두 사람 모두 고민이 많았다. 기술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업계에서 ‘국산화’라는 목표가 다소 소극적이라 여겨져서다. 100개 강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 목표도 한계기업·연구팀에 돈만 쥐어주거나 지나치게 계량적 성과를 내는 데만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유 대표와 김 박사는 주요 품목 1∼2가지를 고품질로 끌어올려 본보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어중간한 기업 100곳을 만드는 것보다 국제 무대에서 통할 고품격 기술 하나를 키우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기술자들이 핑계 대거나 조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도록 독립적인 조직도 꾸려야 하고요. 제대로 된 본보기 한두 개만 만들어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희망을 갖고 뛰어들 수 있을 겁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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