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7 16:54
수정 : 2019.08.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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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 조처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슈퍼섬유 산업용 펠트 생산 업체 (주)보우의 공장에서 직원들이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에 해당할 수 있는 원료의 재고를 점검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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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1년 남짓 이어진 끝에 좌초했다. 초기의 열띤 호응에도 실패로 막을 내린 까닭이 일제의 탄압과 이간 책동만은 아니었으며, 운동세력 내부의 분열도 한몫했다고 역사책은 기록하고 있다. ‘참가 세력이 조직적으로 통일되지 못했고, 지도층의 지도력이 모자라 세력이 분열됐을 뿐 아니라, 모금 자체에만 관심을 두었지 보상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지 못했다.’(<이야기 한국사>(풀빛) 제10권)
112년의 시차를 두고 터진 한-일 경제전쟁에서도 내부의 틈이 벌어질 위험지대가 있다. 3대 품목 규제에 이어 28일부터 시행될 ‘백색국가’(그룹A) 배제라는 2차 공격에 따른 영향의 영역별 차이는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이다.
아베 정부가 3대 품목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감광재)의 수출을 두번째로 허가한 것은 지난 19일 밤에 알려졌다. 7일의 첫번째 승인 때처럼 대상 기업은 이번에도 삼성전자였다. 아베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경쟁력과 협상력 차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에 틈이 생길 수 있음을 엿보게 한다. 백색국가 제외로 규제 대상 품목이 크게 늘어난 뒤엔 부문별 영향의 차이는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300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이달 들어 긴급 조사를 벌인 결과, 백색국가 배제에 다수가 ‘영향을 받는다’(67%)면서도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52%)고 답했다. 정부를 고리로 한 관련 정보의 수집·교류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잇고 양쪽의 틈새를 메워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관련 예산의 효율적 사용과 더불어 상생을 유도하는 정책 개입이 필요한 지점이다. 대개 원·하청 계열로 묶인 대기업 처지에서도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상태를 두고 혁신역량이 부족하다느니,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탓에 빚어진 결과라는 ‘네 탓’ 공방이나 ‘각자도생’ 시도는 무익한 때다. 자유무역·다자주의 세계경제 질서가 흔들리고 자국우선주의·보호무역주의가 판을 치면서 국내 대기업과 대기업 간 협업의 필요성까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분열의 위험지대는 산업계 내부뿐 아니라 경영계와 노동계·시민사회 사이에도 잠복해 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화학물질평가법(화평법)을 둘러싼 불화는 이미 한차례 불거진 바 있고 주 52시간 노동제를 비롯한 노동규제의 완화 논란도 불씨로 남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국산화로 대응하기 위해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를 흘려듣기는 어렵다. 경제전쟁의 태풍을 산업계가 제일선에서 맞기 때문이다. 상황이 변하고 위기의 국면이 닥쳤다면 정책도 변해야 하고 바뀌어야 할 규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구 수준이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으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셈법이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뜻밖의 일이 불거진다면 언제든 정반대 쪽으로 바람이 불 수 있다.
불의의 사고 이전에라도 산업계의 요구가, 일본 요인을 빌미로 그동안 쌓인 규제·정책 민원을 한꺼번에 해소하려 든다는 의심을 사는 지경에 이르면 모처럼 형성된 협업·연대의 분위기는 빠르게 식을 수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화관법·화평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는 주장, 52시간제에서 탄력근로 단위기간 연장을 훨씬 넘어서는 요구 따위가 정당한지 세심하게 살폈으면 좋겠다. 규제 완화 주장에서 선별과 절제의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의 공격에 따른 부문별 영향 차이로 틈이 벌어지는 건 불가피해도 감내할 정도로 관리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민간 자발의 불매운동은 우리 안의 틈을 메우는 든든한 뒷받침이다. 기술 패권을 추구하는 ‘기술 중상주의’가 의도한 대로 성공을 거둔 예가 드물다는 역사의 경험에 비춰서도 공포심은 떨쳐낼 일이다.
예의 그 역사책은 국채보상운동의 아쉬운 결말에도 ‘국권 침탈의 위기에서 민중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는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항일 의식을 북돋워주었다’고 평가했다. 그 의미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의 불매운동마저 그런 쓸쓸한 위로를 받게 되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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