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8.27 17:49 수정 : 2019.08.28 09:40

전우용
역사학자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릴 예정인 국제 관함식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일본 해상자위대에 한국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욱일기 대신 일장기를 걸어 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으나, 일본 측은 이 요청을 묵살하고 불참하는 쪽을 택했다. 일본 측 주장의 요지는 “욱일기는 일본의 오랜 전통으로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문제 삼지 않는데 오직 한국만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다시 침략하지 않을 테니 공연한 걱정 말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한국 내 여론은 “욱일기는 전범기이니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쪽과 “이웃 나라 전통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가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많은 일본인이 거의 태초부터 사용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기야 인류가 언제부터 동그란 문양을 사용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본 정부는 1868년 3월23일 ‘태정관포고’로 국기를 공식화했으며, 이어 1870년에는 일본 육군이 일장기를 기본으로 삼아 태양 빛이 온 세상으로 뻗는 모양을 형상화한 욱일기를 군기로 정했다. 군기이니만큼, 일본군이 온 세상을 침략하는 모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889년에는 일본 해군이 ‘해군기장조례’를 공포하여 뱃머리에는 일장기를, 배의 중앙에는 욱일기를 달도록 했다. 군기와 국기를 함께 거는 ‘오래된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일장기와 욱일기를 함께 거는 전통은 일본 군국주의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조슈와 사쓰마 군벌이 각각 장악한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일본의 대외 침략뿐 아니라 자국 내 정치에도 깊이 개입했다. 조슈 군벌과 사쓰마 군벌은 육군대신이나 해군대신을 사임시키는 방법으로 내각 구성을 좌우했으며, 두 군벌 출신 수상도 많았다. 욱일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거는 것은, 자체로 군(軍)과 국(國)이 병립한다는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욱일기는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벌인 모든 침략 행위의 상징이었다. 일본군 위안부가 끌려간 곳에서 처음 본 것도 욱일기였다.

일본이 1954년 자위대를 창설하면서 욱일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거는 관례를 부활시킨 것은, 군국주의 의식을 청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한국인들이 욱일기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침략당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