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마코토(왼쪽)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공동대표와 임용철(오른쪽)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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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증언’ 선배의 어머니 별세
“기록자로서 부끄러운 마음 느껴”
2009년부터 사비로 투쟁현장 동행 ‘나고야 소송지원회’ 연대활동 감동
“20여년 ‘바보들’처럼 우직하게 지원”
23·24일 광주서 다큐 영상 상영회 임 감독이 근로정신대를 알게 된 것은 2005년 무렵이다. 브이제이(VJ)로 활동하던 그는 한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신고 영상을 찍으러 갔다가 우연히 지인을 만났다. “어렸을 적부터 자주 뵈었던 선배의 어머니가 ‘야, 나도 근로정신대 피해자다’라고 하시더라구요. 바로 내 주변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계시다는 생각에 놀랐어요.” 그는 2009년 3월 발족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 해 7월 선배의 어머니 고 김혜옥씨가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 중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증언 기록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미쓰비시자동차 판매점 앞에서 열린 고교생 촛불문화제(2009년 11월)가 긴 여정의 첫 걸음이었다. 이듬해 6월엔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회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아가 삼보일배 투쟁을 할 때도 동행했다. 그는 “근로정신대 투쟁 현장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열일을 제쳐 두고 사비를 들여서라도 쫓아다녔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애초 근로정신대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양금덕(88) 할머니의 삶과 투쟁을 영상으로 기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간 찍었던 3테라 분량의 영상을 보고 또 보다가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연대 활동”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지난해 5월 <뉴스타파>의 영상 공모전에 ‘나고야의 바보들’이란 제목으로 응모해 당선됐다. 이 작품은 지난 2월 <뉴스타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임 감독은 “오랫동안 안고 있던 짐을 조금은 내려 놓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은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다카하시 마코토(77) 공동대표다. 나고야의 교사였던 그는 1998년 1100명이 참여하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를 설립한 뒤 그해 3월 한국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도록 지원했다. 소송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가 확정됐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들은 2007년 7월부터 매주 도쿄 미쓰비시 본사로 달려가 사죄를 촉구하는 ‘금요행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임 감독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를 촉구하는 홍보물을 수백여 명에게 권유해 10여 장이라도 손에 쥐어주시더라구요. 우직한 그들의 활동을 보면서 역설적인 의미로 ‘바보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는 오는 23일 광주시청에서 <나고야의 바보들>을 상영한다. 이날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도 참석한다. 작품 속엔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0년 6월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 삼보일배 행동에 동행했던 모습도 담겨 있다. 근로정신대 시민모임도 24일 저녁 7시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앵콜 상영’한다. 지난달 29일 열린 첫 상영회가 끝난 뒤 관객들은 이 작품을 일본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1명당 1만원씩 모으는 ‘시민 펀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어 자막 등 앞으로 후속작업을 이어가 일본에서 꼭 상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1999년 영상 작업을 시작한 뒤 ‘동광주병원 노동자 투쟁’, 청각장애인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인권현장을 기록해 온 작가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정신대’라는 이름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역사의 소수자였다. 그에게 이제 남은 또 하나의 숙제는 애초 처음 기획했던 <원고 양금덕>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양금덕 할머니께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를 받고 기뻐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영상에 꼭 담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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