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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4 18:58 수정 : 2019.10.25 10:17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양국 총리, 21분간 회담서 공감
“외교당국 소통·민간 교류” 강조
강제동원 시각차 못 좁혔지만
고위급 대화 복원, 전환점 마련
문 대통령 친서 아베에게 전달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만나 양국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뜻도 전달했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시각차는 좁히지 못했지만, ‘고위급 대화 복원’을 통해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낙연 총리는 24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총리관저에서 아베 총리와 만나 “이웃 국가로서 한-일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전했다. 애초 예정된 10여분을 넘겨 21분 동안 진행된 면담에서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회담 뒤 “어려운 상황일수록 양국 간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민간 교류가 중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조 차관은 “두 총리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 총리는 양국 외교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해 나가기를 촉구했고, 아베 총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외무성도 이날 아베 총리가 이 총리에게 “(한-일 간)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당국 간의 의사소통을 계속하자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총리의 태풍 하기비스 피해 위로 메시지에 대해 감사의 뜻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대해선 입장 차이가 여전함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1965년 청구권협정을 통해 배상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일본이 그런 것처럼, 한국도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번에도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배상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협의가 필요한 문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짧은 시간의 회담이어서 배상에 대한 구체적인 현안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이날 이 총리가 전한 문 대통령의 친서에는 ‘당면 현안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서로 노력하자’는 취지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안 해결을 위해) 서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자는 메시지 외에 정상회담을 구체적으로 언제 하자든지 하는 식의 제안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방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베 총리에게 “양국 관계가 개선되어 두 정상이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정상회담 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른다. 시기와 장소가 (있는 제안이) 아니라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의 기대를 말했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번 이 총리의 방일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8월 정부의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등으로 숨 가쁘게 악화한 한-일 관계를 일단 진정시킬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이 총리는 회담 뒤 “이제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외교당국 간 비공개 대화가 이제 공식화됐다고 받아들인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정부 관계자도 도쿄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존에는 길(소통채널)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길이 깔리면 대화와 협의는 아무래도 속도가 좀 더 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관계 개선의 발판을 마련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1년여 만에 열린 한-일 고위급 회담으로, 한-일 관계가 ‘숨고르기’를 하고 정상회담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계적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두고, 한·미·일 공조, 북한 문제 등에 대해 협력은 한다는 공감대는 이뤘다”고 평가했다.

한-일 갈등의 근본 배경인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고수해, 연내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국 관계의 빠른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국가와 국가 간 약속 준수’를 강조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모든 배상은 끝났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양자 간 입장차를 확인했다. 또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점에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양국 관계는 11월23일 지소미아 공식 종료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압류 자산 현금화(매각) 일정 등이 주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리 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공식적인 대화가 잘된다면 올해 예정된 다자회의인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타이, 10월31일~11월4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칠레, 11월16~17일) 등에서 한·일 정상이 마주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도쿄/이완 기자, 조기원 특파원, 박민희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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