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7 15:55
수정 : 2019.08.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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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대만 등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한겨레> 1989년 6월21일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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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생운동 교류·노조 견학 계기로 알려져
농민공·강제 퇴거 등 국가별 상황에 따라 개사
광주시, 2022년까지 노래 제작 배경 등 번역 배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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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대만 등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한겨레> 1989년 6월21일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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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범죄인 인도 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집회 현장에서 우리나라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둥어로 울려 퍼진 장면이 이슈가 됐지만, 사실 이 노래는 만들어진 직후인 1980년대부터 이미 홍콩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전파돼 투쟁 현장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
▶관련 기사 : 홍콩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당시 30살)씨와 그와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가 1978년 세상을 떠난 박기순(당시 20살)씨의 ‘영혼결혼식’ 직후 두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82년 4월 만들어진 노래다. 당시 전남대생이었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작곡했고, 가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12월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해 소설가 황석영씨가 붙였다.
홍콩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장 먼저 외국어로 번역돼 알려진 나라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2016년 ‘민중항쟁 제36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
임을 위한 행진곡의 세계화: 홍콩·대만·중국을 중심으로’를 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초·중반 한국과 홍콩 운동권 학생들의 교류 과정에서 국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1982년 당시 홍콩기독학생회 회원이었던 안젤라 웡 현 홍콩중문대 교수는 그해 한국와이엠시에이(YMCA) 및 한국기독학생회(KSCF) 등과 함께 개최한 아시아기독교회의 청년 모임에서 노래를 처음 접했다. 이후 홍콩으로 돌아간 웡은 자신이 활동하는 홍콩기독학생회 회원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알린 뒤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2년 뒤 홍콩 기독교 노동운동 조직에서 일했던 그는 영어 가사로 불렸던 노래를 광둥어로 번역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데 기여했다. 당시 번역된 한자어 제목은 ‘애적정전’(March for love). 작사·작곡은 ‘남한 학생’으로 소개됐다.
1985년 세계기독학생연맹(WSCF)의 주선으로 한국의 노동운동 현장을 둘러본 인도·홍콩·필리핀·파키스탄의 활동가들이 그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영어로 번역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발견할 수 있다. 홍콩은 일본과 더불어 1960년대부터 학생 및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물론 당시 우리나라 학생·노동운동을 지원했던 다수의 국제 기독교 운동단체의 본부가 있던 곳이었다.
홍콩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린 나라는 대만이었다. 1987년 대만 정부가 40년 만에 계엄령을 해제한 뒤 대만 노동조합 간부들은 노동운동 현장을 견학하러 한국을 찾았다. 1988년 가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노동자연대회의에 참석한 당시 타오웬 공항화물 서비스회사의 노조 간부 커정륭은 경남 마산의 한 공장에서 시위 중인 노동자들이 북을 치며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커정륭은 대만에 돌아와 자신이 외운 멜로디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노동자전가’를 만들었다. 원곡보다 다소 단순하게 편곡된 ‘노동자전가’는 1989년께 대만 노동운동계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한겨레> 1989년 6월21일치 기사 ‘80년대 운동가요 고전 ‘임을 위한 행진곡’ 동남아서 ‘민중의 노래’로 애창’을 보면, 그해 3월 대만에 다녀온 동일방직 노조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민권운동이 대만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대만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같은 달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빈민대회에선 상계동 철거민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밖에 중국·캄보디아·태국·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있다. 캄보디아에선 1980년대 후반 강제 퇴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운동에서 이 노래가 불렸고, 태국에선 1990년대 노동운동박물관 노동자 밴드 ‘파라돈’(Paradon)이 ‘연대’(Solidarity)라는 제목을 붙여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2005년 신공인예술단이 농민공 운동에 대한 가사를 담은 ‘노동자찬가’로 이 노래를 불렀고, 인도네시아에선 인도네시아 표준어인 바하사어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시는 오는 2022년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등을 번역해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5월 민주주의 정신을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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