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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9 17:49 수정 : 2019.09.19 18:58

1987년 1월 화성연쇄살인 5차 사건이 일어난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7년 1월 화성연쇄살인 5차 사건이 일어난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악의 미제 사건으로 꼽혀온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발생 33년 만에 특정됐다. ‘단일사건 최대규모’라는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지역에서 잇달아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경찰 수사의 오욕인 동시에 국민들에겐 공포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유력 용의자를 밝혀낸 경찰의 끈질긴 수사 의지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3~71살 여성 10명이 엽기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성폭행당하고 살해됐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처제를 성폭행살인하고 부산교도소에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아무개(56)씨의 디엔에이가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디엔에이와 일치했다. 다른 사건 증거물의 디엔에이 분석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씨가 범행을 부인했다곤 하나 진범의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다만 기존에 추정했던 범인의 혈액형과 이씨의 혈액형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더 치밀한 수사로 이번만은 의혹과 논란을 남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모방범죄 우려와 함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번지고, 과학수사 도입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였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아시안게임·올림픽으로 들떠 있던 1980년대 한편에서 여성들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가 4명에 이른다. 30년 전 수사의 한계가 컸다 해도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다. 담당 경찰들도 일선에서 물러난 뒤 과도한 스트레스로 숨지는 등 상처가 컸다.

공소시효가 끝난 2006년 이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해온 많은 경찰관들의 노력이 ‘영구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발판이 됐다고 본다. 유전자 분석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경찰의 의지가 마침내 30여년 만에 진실에 다가서도록 한 셈이다.

2015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이 사건의 소급적용은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어렵다. 우선은 철저한 수사로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밝혀내는 게 급선무다. 그리하여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향한 다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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