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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05:00 수정 : 2019.10.07 15:23

화성에서 부녀자 성폭행 살해 사건이 잇따랐던 1990년 당시 한 고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연쇄살인 용의자 이씨 “내 소행” 자백 파장
당시 범인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잡았다지만
전문가들 “해당 수사기법으로는 용의자 특정 어려워”
20년 징역 산 윤씨 “나는 8차 사건 범인 아니다”
“용의자가 범죄 부풀리려 거짓 자백 가능성” 반론도

화성에서 부녀자 성폭행 살해 사건이 잇따랐던 1990년 당시 한 고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아무개(56)씨가 ‘모방범죄’로 결론이 나 범인까지 붙잡힌 8차 사건도 자기가 했다고 자백하면서 과거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1988년 발생한 8차 사건을 수사하며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이란 당시로선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 범인을 잡았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이 기법에 따른 감정 결과가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됐지만, 이씨의 자백에 사건이 30여년 만에 또다시 미궁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한편에서는 이씨가 자신의 범죄 행각을 부풀리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허위 주장을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9월16일 아침 6시50분께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가정집에서 박아무개(당시 13살)양이 성폭행당하고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 사건의 범행 수법만 놓고 보면,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손발을 묶는 등의 다른 화성사건처럼 ‘범인이 자신을 인증하는 특이한 수법’(시그니처)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과 경찰은 화성에서 일어난 성폭행· 피살 사건이라는 이유로 화성 8차 사건으로 분류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체모를 발견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다. 이들 연구소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혈액형이 비(B)형이며, 체모에 다량의 티타늄이 함유됐다는 내용을 경찰에 통보했다. 이는 체모 등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해 용의자의 것과 대조하는 기법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화성 일대에서 기계수리점·나염공장 등 종업원 가운데 혈액형이 B형인 사람 51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 조사했고, 윤아무개(당시 22살·농기계 수리공)씨의 체모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동일하다는 국과수 답변을 받아 이듬해 7월 윤씨를 붙잡았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이 감별법은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재판 증거로 채택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방법으로는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이 기술의 신뢰도는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며 “같은 음식을 먹거나 유사한 환경에 사는 사람이면 성분이 비슷하게 검출될 수 있다. 가족이나 동네 주민, 직장 사람들에게서 성분이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과학수사담당 경찰관도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은 화학반응을 통해 직업 정도를 파악하는 데 쓰였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신뢰도 때문에 용의자를 특정하는 수단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지금은 확실한 디엔에이(DNA) 분석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의 판단도 불확실성에 근거를 둔 대목이 엿보인다. 이 사건 재판부(수원지법 형사합의2부)는 1989년 10월23일 윤씨의 선고공판에서 “방사성동위원소의 함량이 12개 중 10개가 편차 40% 이내에서 범인과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에 따라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 윤씨도 2003년 5월 주간지 <시사저널>과 한 옥중 인터뷰에서 “나는 8차 사건 범인이 아니다. 직업이 농기계 용접공이었을 뿐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에서 티타늄이 나온 것은) 우연이다. 피살자 오빠와는 친구 사이로, (수사 과정에서) 맞았다”고 뒤늦게 범행을 부인했다. 윤씨는 2009년 8월께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반론도 제기된다. 당시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체모가 나왔고 경찰이 용의자 1500여명의 체모와 함께 국과수에 제출했다”며 “방사성동위원소 검사로 한 명이 추려졌는데 그게 잘못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용의자 이씨가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박아무개(17)양 피살 사건과 1992년 6월 청주시 복대동 가정주부 이아무개(28) 살해 사건 등 2건이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6일 밝혔다. 이 사건 역시 화성사건과 범행 수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기성 채윤태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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