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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9:36 수정 : 2019.10.16 18:2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검찰 깃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검찰 깃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i.co.kr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헌법 제12조 제3항을 보면, 인신구속 등 수사기관에 의한 강제처분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가능하며, 이 영장은 ‘검사의 신청’에 따라 발부되는 것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법관의 영장발부권은 다른 나라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명시한 헌법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국 검찰이 장악한 무소불위 권력의 뿌리를 일제강점기 형사법 체계에서 찾은 기사 ‘검찰권력의 탄생’(<한겨레> 10월5일치 1·3·4면)을 썼던 토요판팀장 정은주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기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헌법에 규정된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본은 식민지 통치를 시작한 뒤 조선의 형사사법 체계를 설계하면서 일본 본토에서 시행하던 판사의 ‘영장제도’를 조선에서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탄압하고 식민적 지배를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인신구속 등을 수사기관이 맘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1912년 조선형사령에서부터 “급속한 처분을 요할 때”는 검사가 피고인을 신문하고 20일 이내에 구류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법관에 의한 영장주의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대입니다. 당시 미군정은 법관의 영장 없이 인신을 구속할 수 있고, 부당하게 구속된 사람을 구제하는 절차가 없는 식민지 형사법 체계를 반인권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48년 3월20일 공포된 미군정법령 제176호를 보면, 검찰과 사법경찰관(경찰) 기타 어떠한 관헌이라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에는 영장청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검사는 구인, 사법경찰관은 유치할 권한이 있었기에, 검사와 사법경찰관 모두 법관에게 직접 영장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영장청구권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자 미군정은 보충 규정(법령 제180호)을 내놓았습니다. 핵심 내용은 경찰의 영장청구는 검사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법의 독특한 ‘검사경유 원칙’이 최초로 표명된 것입니다. 이 보충 규정은 당시 사법부와 검찰청 사이 긴밀한 의사소통의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948년 제헌 헌법과 1954년 형사소송법에 검사경유 원칙은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헌법은 영장의 청구권자를 따로 두지 않았고,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하거나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검사와 사법경찰관 모두 영장청구권이 있는 것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결정적 변화는 5·16 군사쿠데타를 기점으로 발생합니다. 1961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구속영장 및 압수수색영장 규정에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빠지고 대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 청구하여”가 들어갑니다. 검사경유 원칙이 법률 차원으로 처음 규정된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1962년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에서 “체포·구금·수색·압수에 있어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져 검사의 영장신청권이 헌법 차원으로 격상됩니다.

실제로 1960년대에는 검찰에게 성장의 기회가 열렸습니다. 경찰의 위세는 이승만 정권에서와 같이 유지될 수 없었고, 4·19 이후 떠올랐던 경찰수사권 독립도 차단됐습니다. 검찰은 군사정권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면서 국가보안법·반공법 사건, 주요 정치권 사건 등을 적극 처리해 권력을 확장해나갔습니다.

영장청구권의 주체를 검사로 명시한 현행 헌법 규정의 입법사를 살펴보니 그 뿌리는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인신구속의 권한을 수사기관에 부여했던 식민지 형사사법 체제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그 권한을 놓지 않기 위해 검찰은 집요하게 노력했고, 그 결과 외국 헌법 사례에는 없는 ‘영장청구권 독점권’을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장악한 힘을 놓치지 않기 위한 검찰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김선택 ‘영장청구권 관련 헌법 규정 연구’(2008), 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2010·역사비평사)

정은주 토요판팀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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