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팀장 한국 사회의 2010년대는 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때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최소한의 시스템마저 붕괴했다는 걸 보여줬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선택이나 작동하지 않은 수난 구조 체계 문제는 오로지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청해진해운은 회사 과실로 사고가 난 사실이 드러나면 선체 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퇴선 명령을 주저했다. 참사 2년 전 국회는 예산을 절감한다며 수난 구조 체계를 민영화했고, 민간 구조업체는 이윤이 남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렇게 부재를 증명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은 이런 ‘나라 아닌 나라’를 정상국가로 복원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이 외침에는 크게 두 갈래의 촛불이 결합했다. 한 갈래는 1990년 체제의 청산을 외치는 촛불이었다. 1990년 체제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해 탄생시킨 ‘거대 보수 정당’을 일컫는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생명을 다한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이 야합으로 또 한번 생명을 연장했다. 박근혜는 이 야합과 외환위기 때 소환된 박정희의 그림자가 낳은 마지막 유산이었다. 마지막 유산은 자신에게 통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신기루가 됐다. 이 갈래의 촛불이 원하는 정상국가가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능력 있는 통치자’의 존재로 귀결된 까닭이다. 또 다른 갈래는 시장에 종속된 시스템을 되찾아오고, 경쟁과 격차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를 혁신하자는 운동이었다. 경쟁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짓밟고 우월한 학벌을 획득해야 하는 교육에서 발생했고, 격차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정규직을 보장받지만 누군가는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에서 확인됐으며, 차별은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의 정체성 정치에서 거론됐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2016년 구의역 김군과 2018년 김용균의 비극에 가슴을 쳤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2019년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입시 특혜 논란을 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상위 10%들끼리 주고받은 특권의 대물림을 확인한 뒤 분노하고 있다.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능력 있는 통치자’에게 마지막 걸림돌은 기득권의 오랜 벗이자 칼이 되어온 검찰의 존재다.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칼날에 의해 한국 사회가 1990년 체제로 후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닌 이들이 서초동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2009년의 비극은 트라우마가 되어 두려움을 강화했다. 반면 경쟁과 격차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를 혁신하자는 이들에게 1990년 체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자유한국당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조국 수호’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는 목소리로는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난 2년5개월 동안 깨달았다. 이들이 서초동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는 까닭이다. 마치 해방구와 같았던 2016년 광화문 광장에는 2년 전 참사에 의해 붕괴했던 시스템을 딛고 일어설 새로움에 대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어쩌면 원래 나뉘어 있던 여러 갈래의 정치적 지향이 2016년 촛불로 묶일 수 있었던 건 그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2년5개월처럼 그 에너지를 과거 청산에만 쓰고 만다면, 어느새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가능성은 소멸하고 정치적 냉소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책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조국 사태’ 내내 일말의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한 정의당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갈 곳을 잃은 채 부유하는 그때의 그 에너지가 정치적 냉소를 자양분 삼아 1990년 야합이 낳은 유산보다 더 참혹한 괴물로 재탄생한다면 후과는 과연 누가 감당할 것인가. nang@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2014년 참사와 두 갈래의 촛불 / 이재훈 |
24시팀장 한국 사회의 2010년대는 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때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최소한의 시스템마저 붕괴했다는 걸 보여줬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선택이나 작동하지 않은 수난 구조 체계 문제는 오로지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청해진해운은 회사 과실로 사고가 난 사실이 드러나면 선체 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퇴선 명령을 주저했다. 참사 2년 전 국회는 예산을 절감한다며 수난 구조 체계를 민영화했고, 민간 구조업체는 이윤이 남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렇게 부재를 증명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은 이런 ‘나라 아닌 나라’를 정상국가로 복원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이 외침에는 크게 두 갈래의 촛불이 결합했다. 한 갈래는 1990년 체제의 청산을 외치는 촛불이었다. 1990년 체제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해 탄생시킨 ‘거대 보수 정당’을 일컫는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생명을 다한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이 야합으로 또 한번 생명을 연장했다. 박근혜는 이 야합과 외환위기 때 소환된 박정희의 그림자가 낳은 마지막 유산이었다. 마지막 유산은 자신에게 통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신기루가 됐다. 이 갈래의 촛불이 원하는 정상국가가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능력 있는 통치자’의 존재로 귀결된 까닭이다. 또 다른 갈래는 시장에 종속된 시스템을 되찾아오고, 경쟁과 격차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를 혁신하자는 운동이었다. 경쟁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짓밟고 우월한 학벌을 획득해야 하는 교육에서 발생했고, 격차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정규직을 보장받지만 누군가는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에서 확인됐으며, 차별은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의 정체성 정치에서 거론됐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2016년 구의역 김군과 2018년 김용균의 비극에 가슴을 쳤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2019년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입시 특혜 논란을 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상위 10%들끼리 주고받은 특권의 대물림을 확인한 뒤 분노하고 있다.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능력 있는 통치자’에게 마지막 걸림돌은 기득권의 오랜 벗이자 칼이 되어온 검찰의 존재다.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칼날에 의해 한국 사회가 1990년 체제로 후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닌 이들이 서초동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2009년의 비극은 트라우마가 되어 두려움을 강화했다. 반면 경쟁과 격차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를 혁신하자는 이들에게 1990년 체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자유한국당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조국 수호’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는 목소리로는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난 2년5개월 동안 깨달았다. 이들이 서초동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는 까닭이다. 마치 해방구와 같았던 2016년 광화문 광장에는 2년 전 참사에 의해 붕괴했던 시스템을 딛고 일어설 새로움에 대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어쩌면 원래 나뉘어 있던 여러 갈래의 정치적 지향이 2016년 촛불로 묶일 수 있었던 건 그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2년5개월처럼 그 에너지를 과거 청산에만 쓰고 만다면, 어느새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가능성은 소멸하고 정치적 냉소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책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조국 사태’ 내내 일말의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한 정의당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갈 곳을 잃은 채 부유하는 그때의 그 에너지가 정치적 냉소를 자양분 삼아 1990년 야합이 낳은 유산보다 더 참혹한 괴물로 재탄생한다면 후과는 과연 누가 감당할 것인가.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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