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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6 18:15 수정 : 2019.11.27 17:47

임재우 ㅣ 법조팀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한 달여의 ‘전쟁 같은’ 임기를 마치고 갑자기 사퇴한 직후였던 지난달 중순,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기자님, 헥스트라코인 사기 기사 잘 읽었습니다.” 뻔한 비트코인 투자 광고 글이라 보고 넘기려다, 번뜩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헥스트라코인은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암호화폐 광풍에 올라탄 ‘유사 코인’ 중 하나다. 외형만 암호화폐의 꼴을 갖췄을 뿐,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면 단계별로 투자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사실상 ‘다단계’ 사기였다. 예상 피해액만 300억원이 넘었다. 유사 코인에 대한 기사를 쓴 게 지난해 8월이었으니,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마주친 단어였다.

독자는 자신을 “헥스트라코인 사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민사소송에서 사용하고 싶은데 일반 국민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 자료를 얻기가 매우 힘들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보고 고소가 진행 중임을 알게 되었고,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속 취재를 이어가지 않아 도움을 줄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연락처로 변호사님께 연락을 하시면 진행 상황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라는, 민망한 답장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서없이 ‘유사 코인 사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새로 시행되는 ‘훈령’ 때문이다.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이 12월1일 시행된다. 오보를 낸 기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가장 논란이 됐지만, 이 훈령이 헥스트라코인과 같은 범죄 피해의 구제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은 잘 지적되지 않았다.

‘가상화폐 사기’나 ‘주가 조작’과 같이 피해자가 다수인 집단소송,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제조물 책임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데 핵심적인 도구가 수사 상황에 대한 언론보도다.

“회사들이 주가조작이나 분식으로 장난을 쳤다고 해봐요.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모르면, 자신이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거예요.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이 동일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알고, 그런 피해를 준 기업의 수사 상황이 알려지면, 그제야 소송에 참여하게 되는 거죠.” 금융사기 소액주주 소송을 여러 번 진행한 한 변호사의 말이다.

그런데 조 전 장관 수사로 ‘피의사실 공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거의 모든 ‘수사 상황 유출’을 가로막는 훈령이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이 훈령은 기소 전 형사사건에 대해 수사 상황을 “일체” 알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재판에 들어가서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필요 최소한의 정보”만을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보담당관이 아닌 검사와 수사관은 언론과 개별 접촉할 수 없다. 사실상 수사 상황이 깜깜이가 되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기업 수사가 ‘슈뢰딩거의 수사’가 될 것이란 얘기가 돈다.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양자역학 이론의 불완전함을 꼬집기 위해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는 유명한 사고실험(생각으로만 성립되는 실험)을 고안했다. 그처럼 검찰이 비로소 상자를 열어야 이 기업이 기소됐는지 불기소됐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부담스러운 기업 수사를 ‘말아먹기’ 좋은 환경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검찰에 의한 악질적인 피의사실 유포가 분명히 존재했고, 이는 바로잡혀야 한다. 하지만 이를 명목으로 모든 ‘언로’를 차단한다면, 결국은 ‘강자’들이 수혜자가 될지 모른다.

검찰이 어느 날 불쑥 상자를 열어 대기업을 ‘불기소 처분’하면, 언론은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을까. 제품을 속여 판 불량 기업의 피해자들은 민사소송 소멸시효를 넘기지 않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 수 있을까.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수사, 코오롱 인보사 수사는 조국 사태 이후 ‘깜깜이’가 되었다.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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