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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4 19:08 수정 : 2019.12.25 02:31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야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선거법 일괄상정 등 합의안을 발표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피의자 방어권 신장될 것” VS “재판서 자백 잡아떼면 혼란”

검경수사권 조정안 국회 통과해
피의자 동의해야 조서 증거력 인정

형사재판 과중화·장기화 전망 속
“판사 충돌 등 뒷받침 필요” 지적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야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선거법 일괄상정 등 합의안을 발표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2015년 8월 대법원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한 전 총리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됐다. 한 전 대표는 검찰에서는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으나 1심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의 말이 뒤집힌 점에 주목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법정 진술보다 검찰에서 한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하면서 “(원심에) 공판중심주의 원칙을 위반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진술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지난 23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면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조정안에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312조는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해 그 진술을 기재한 검찰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경찰에서 진술한 조서와는 다른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검찰 조서 역시 경찰 조서와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게 했다.

이 법안대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 검사의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동의하는 경우에만 증거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한 전 총리의 재판처럼 검찰 조서의 신빙성에 상당한 무게를 둬온 형사재판의 관행이 근본적으로 허물어지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진정한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이라는 기대와 ‘재판 과정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당장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대로 가면 앞으로 수사 못 한다’는 노골적인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받더라도 재판에서 잡아떼면 방법이 없다”며 “특히 진술에 의존하는 뇌물 등 부패사범의 공소유지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모든 형사재판이 참고인 진술조서 증거 채택을 반대해 수개월째 증인을 불러 조사하고 있는 사법농단 재판같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늦기 전에 가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만 검사의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자백 위주의 밀실 수사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검사 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의 조서에 근본적인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법정에서 범죄사실이 재구성되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다 신장될 것이고, 이는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에도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형사재판의 과중화·장기화가 불가피한 만큼 판사인력 충원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찰 진술조서 증거능력 제한으로 인한 재판 과중화는) 공판중심주의에 충실한 재판을 위해 법원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며 “다만 판사 인력 충원을 위해 입법부의 법 개정과 행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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