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4 19:10
수정 : 2019.12.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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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울산 경제부시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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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일기형식 메모장일 뿐" 주장
국정농단 '안종범 수첩' 내용 중
전언은 법정서 증거 인정 못받아
검찰, 기록 신빙성 입증여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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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울산 경제부시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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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단상과 소회, 발상, 풍문 등을 적은 일기 형식의 메모장에 불과하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청와대에 처음 제보한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이 주목받고 있다. 그의 수첩에 청와대(BH)나 대통령(VIP)으로 추정되는 단어들이 여럿 담긴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송 부시장은 수첩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를 ‘안내도’ 삼아 선거개입 의혹의 실체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지난 6일 압수수색해 확보한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는 지방선거 당시 송 시장 쪽의 선거 공약과 선거 전략, 이와 관련해 청와대 등과 논의한 정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송 시장 쪽이 내건 공공병원 공약 등과 관련해 ‘공공병원 공약과 산재모병원 좌초 BH(청와대로 추정) 방문’, ‘VIP 면담자료-원전해체센터, 국립대, 외곽순환도로 등이 핵심’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당내 경쟁자인 임동호 전 최고위원과 관련해 ‘중앙당과 BH, 임동호 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 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의 신빙성을 놓고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송 부시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실이 아니거나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송 시장 측근으로 지목된 박아무개씨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무원이었던 송 부시장은 당시 선거캠프에서 정책 분야를 맡았다. (수첩에 적힌) 정무적 부분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시장은 “결과적으로 (송 부시장 수첩에 담긴) 선거 전략에 따라 청와대도, 행정부처도 움직였다”며 그의 메모의 신빙성을 높게 봤다. 송 부시장의 수첩 중 일부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송 시장은 유력한 경쟁자였던 임 전 최고위원을 제치고 경선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았고, 김 전 시장이 내건 선거 공약인 산재모병원은 선거를 보름여 앞둔 상황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검찰도 이런 점에 주목해 그의 수첩을 유력 증거로 보고 있다.
실제 ‘송병기 수첩’이 법적으로 얼마나 증거능력을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비슷한 예가 국정농단 사건에서 ‘안종범 수첩’이다. 그의 수첩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이 빼곡히 담겼다.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면담해 나눈 대화를 안 전 수석에게 전한 내용도 등장한다. ‘국정농단’ 1심에서 법원은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제한적으로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기록만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면담 부분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증거가 될 수 없는 ‘전문진술이 기재된 서류’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송병기 수첩’ 또한 ‘전언’으로 판단되면, 그 자체로 증거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송병기 수첩’을 보강할 진술·증거물을 찾기 위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송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며 선거를 도운 건설업자 류아무개씨의 통화가 담긴 녹음파일, 송 부시장과 송 시장이 나눈 대화 녹음파일 등을 압수해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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