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5 19:28 수정 : 2020.01.06 13:26

김수헌 ㅣ 경제팀장

경기가 부진했던 박근혜 정부 중반기에 경제사령탑을 맡았던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별로 주목하지 않던 ‘경상성장률’을 거시경제 운용의 주요 타깃으로 내세웠다. 경상성장률은 물가 변동분이 반영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증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흔히 경제성장률로 불리는 실질 지디피 증가율에 물가 상승률을 더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경상성장률은 실제 호주머니에 들어온 돈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의미하므로 ‘체감 성장률’이라고 할 수 있다.

최 전 부총리는 2014년 취임 초기부터 국민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위해선 ‘경상성장률 6%’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경제정책방향 발표 땐 “물가를 감안해 경상성장률을 실질성장률과 함께 관리하겠다”며 거시경제정책 전환을 공식화했다. 저물가와 경기 부진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욕은 컸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최 전 부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난데다,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것 외에는 물가를 끌어올릴 뾰족한 정책 수단을 찾지 못하다 보니 경상성장률 관리 정책은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그렇게 반짝 주목받았던 경상성장률이 최근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수치가 놀라울 만큼 급격히 추락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2019년 실질성장률은 2.0%, 경상성장률은 1.2%에 그쳤을 것으로 전망한다. 물가 하락으로 경상성장률이 실질성장률보다 낮은 이례적인 역전 현상이다. 더욱이 경상성장률이 실질성장률의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경상성장률은 외환위기 충격으로 1998년에 -0.9%까지 내려갔지만, 이후엔 한차례도 3%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2017년만 해도 5.5%였는데, 2년 새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게 됐다. 이러니 체감 경기가 좋을 수가 없다. 경상성장률 1.2%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이다. 미국(전망치 4.1%), 영국(3.4%), 독일(2.5%)은 물론이고 일본(1.6%)에도 못 미친다.

경상성장률 급락은 소비·투자·수출입을 모두 반영한 경제 전체의 물가를 나타내는 지디피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곤두박질친 결과다. 수요 부진에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가격 하락까지 더해지면서 지디피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2018년 4분기(-0.1%)부터 지난해 3분기(-1.6%)까지 4개 분기째 마이너스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지난해 3분기 수치는 20년 만에 가장 낮았다. 정부 전망보다 지난해 4분기 실질성장률과 지디피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안 좋게 나온다면 경상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사실 정부의 전망 자체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국회에 올해 예산안을 제출할 때 2019년과 2020년 경상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0%와 3.8%로 제시했다. 불과 석달 뒤 나온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선 이를 각각 1.2%와 3.4%로 대폭 낮췄다. 세입 예산을 짜는 주요한 기준점이고 향후 국가채무비율 등을 예상하는 근거가 되는 경상성장률 전망이 이런 식이니, ‘장밋빛 경제인식’에 따른 정책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당장 올해 들어올 세금이 정부의 애초 계획보다 줄어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랏빚 규모나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도 올라갈 수 있다.

경상성장률 부진은 우리 경제의 골칫거리인 가계부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가계빚 증가율은 낮아지고 있지만 경상성장률이 더 급격히 떨어지다 보니 부채 위험도는 되레 커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보면, 지난해 2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지디피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율은 홍콩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았다.

정부는 “저성장 시기를 최단기간 안에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짰다고 한다. 집권 4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로선 올해가 경기 반등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적극적인 거시경제 관리를 통해 경상성장률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고 가계부채 관리와 재정 운용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minerv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