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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6 15:57 수정 : 2020.01.08 11:19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카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의 장례식이 6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가운데, 이란혁명수비대 군인들이 운구 차량을 둘러싸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미, 2018년 일방적 핵협정 탈퇴 이후
미국 쿠드스군 암살에 반발 강력 대응
이란 “핵프로그램 생산에 제한 안 둘 것”
핵무장 경쟁으로 미 입지 더 좁아질수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카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의 장례식이 6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가운데, 이란혁명수비대 군인들이 운구 차량을 둘러싸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중동이 대결과 긴장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에 대한 미국의 암살에 반발한 이란은 지난 2015년 국제사회와 맺은 핵협정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선언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며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5일(현지시각) 성명에서 “우라늄 농축 능력을 포함해 (핵물질) 생산, 연구 등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핵무기에 쓸 수 있도록 우라늄 농축 농도를 계속 높여가겠다는 것으로, 이란이 2015년 7월 미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 등과 맺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이란핵협정)의 사실상 붕괴를 의미한다. 당시, 이란은 협정을 통해 핵개발 능력을 제한하는 대신에 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이란은 이날 성명에서 핵협정 파기를 발표하면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계속하고,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이란의 이익이 보장되면 핵협정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해제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이란의 핵개발이 재개될 경우 양쪽의 대결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5월 이란핵협정을 일방적 탈퇴한 데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15년이 지나면 이란 핵개발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며, 핵협정 일방 탈퇴를 강행하면서 이란에 대한 강화된 제재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 조처는 결과적으로 이란의 핵개발을 기존 협정의 일정보다도 10년이나 빨리 재촉하는 결과를 현재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암살을 전후해 전례없는 강수와 위협을 거듭하고 있지만, 미국은 중동에서 핵개발 경쟁과 군사전략 입지가 되레 위축되는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이란핵협정의 최대 안전판은 이란이 협정을 파기해도 핵무기 획득까지 1년이라는 기한이 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핵협정 탈퇴 이후 이란은 단계적으로 협정의 제한사항을 벗어던졌다. 결국, 이날 선언으로 핵무기 획득에 훨씬 짧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핵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뉴욕 타임스>에 이란이 이제 핵폭탄을 개발해 획득하는 데는 4~5개월, 짧으면 두달도 안 걸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당장 핵폭탄 개발과 획득으로 질주할지는 불투명하다.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 지속과 사찰관 잔류를 약속했는데, 이는 핵개발을 놓고 국제사회와 밀고 당기기를 하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어쨌든 이란은 이제 핵개발이라는 지렛대를 다시 움켜쥐고 미국과의 대결을 펼쳐가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더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도 심각한 딜레마로 몰리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2000년대 초에 암호명 ‘올림픽게임’이라는 사이버 공격으로, 이란의 핵개발 시설을 무력화했다. 그 뒤 이란은 자신들의 핵개발 시설을 컴퓨터 및 통신망과 절연시키는 한편 폭격이 어려운 산속 깊숙이 숨겨놓았다. 이란의 핵개발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 폭격을 감행하려다, 미국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강경 우익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부패 등으로 인한 재집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핵능력 강화를 선언한 이란을 상대로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행동에 나선다면, 트럼프 행정부도 숟가락을 얻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등 중동의 반미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고, 미국의 중동 수렁은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중동에서 이란과 대척점에 있는 사우디도 핵 개발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자칫 중동에서 ‘핵무장 경쟁’이 촉발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란의 핵개발 재개와 중동 위기가 미-북 협상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이 위기에 편승해 미국을 더욱 압박할지, 중동과 동북아에서 동시 위기를 조성하지 않기 위해 미국이 협상에 유연하게 나올 수도 있다. 중동 위기에 휩싸인 미국이 대북 협상에 나설 여력이 없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북핵 문제도 중동 위기로 변곡점이 더 가팔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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