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방정환 선생은 그 하루라도 어린이들이 행복한 날이었으면 했다. 그때의 어린이들에 비하면 요즘의 어린이들은 나날이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오늘을 사는 어린이들의 삶은 또 삶의 질은 안타까울 정도로 고달프고 팍팍하다. 어린이들을 무한 경쟁의 대열로 다그치며 몰아 넣고 있는 이 나라의 터무니없는 교육 정책과 그에 맞추느라 허둥거리는 어른들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성취도 평가라는 이름 아래 일제히 시험을 보고, 시험 점수에 따라 한 줄로 길게 줄을 선다. 부족하면 방학도 반납하고 보충학습을 받으며, 쉬는 시간 5분을 줄여서까지 늘어난 영어 수학 시간에 맞추기 위해 종종걸음 치며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독서를 하고 강제로 봉사를 하며 강제로 그 모두를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도 모자라 방과후 활동과 학원으로 돌고 또 돌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나며, 놀면서 자란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정녕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채찍질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나마,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어린이들의 곁에 동화와 동시가,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좋은 동화, 동시만큼은 지금 이곳에서의 어린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 삼는다.
예술이며 문학인 한 어린이문학은 사람이 삶에서 저버려서는 안 될 가장 소박하고 가장 단단한 진실을 어린이들의 손에 쥐어주고자 한다.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이 단단한 진실은 삶이 어떠하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마음 깊이 새겨 줄 것이다.
눈물과 웃음 속에서 그 진실을 움켜쥔 어린이들은 세상이란 험한 강을 강건하게 건널 수 있는 바탕을 얻게 될 것이다. 마치 옛이야기의 결핍된 주인공이 선한 마음과 굳센 의지로 마침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되듯,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그 작은 진실을 품에 안고 고단한 여행길을 타박타박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더욱이 어린이문학은 그 길을 홀로 걷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작품을 읽으며 어린이들은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절로 경험하게 된다. 절름거리며 아이를 들쳐업은 몽실이, 무녀리 새끼 돼지 윌버와 마당을 나서는 암탉 잎싹, 얼음 어는 강물을 헤엄치는 물오리, 심지어 길 모퉁이 강아지똥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동화가, 동시가 지닌 상상의 힘으로 함께 사는 다른 이의 기쁨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깊이 받아 안게 될 것이다.
동화가, 동시가 아니라면 어찌 다른 이의 삶, 다른 존재의 삶에 이다지 깊이 공명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이 공명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어쩌면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건네야 할 능력이며, 세상을 사는 모든 존재가 지녀야 할 능력이 아닐까. 그것이 곧 동시와 동화 속에서 움트고 길러지는 힘일 것이다.
공명하는 힘이 깃든 마음은 결코 4대강을 파헤쳐 뭇생명들을 거두지도 않을 것이며, 생떼 같은 목숨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지도 않을 것이며, 중언부언 거짓말로 진실을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땅의 어린이들을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으로 내팽개치지는 않을 것이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 읽었던 어른들이 만들어 갈 나라는 이처럼 소박하고 진실할 뿐이다.
김상욱 교수/ 춘천교대 국어교육과
childlit@hanmail.net
▷ 추천 도서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