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사회부 지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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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양 천도 560여년 동안의 숙원이 이제야 이뤄졌다!” 1961년 12월 청계천 복개도로 개통식에서 당시 윤태일 서울시장이 감격해한 말이다. 청계천이 말끔히 덮이고 넓은 도로로 변모한 것을 감격해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의 한 사람인 윤 시장만이 아니다.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 근대화와 발전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서울 심장부를 꿰뚫고 흐르던 청계천이 덮임으로써 도시 미관으로나 시민의 보건위생상 또는 교통난 해결 등에 큰 도움을 주게 됐다”(조선일보 60년 12월5일)는 표현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69년 3월 청계천 복개도로 위에 왕복 4차로의 ‘웅장한’ 고가도로가 완성됐을 때는 “수도의 동서혈맥” “북악 스카이웨이에 이은 또하나의 명물”이라며 환호했다. 불과 두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다.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에서 발원한 물을 안고 태곳적부터 한강으로 흘렀을 서울 도심의 실핏줄인 청계천을 덮어 놓고 희희낙락했으니 말이다. 청계천은 그 이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서울 도심의 생명살이를 뒷받침해온 개천 곧 생태계의 중심 축이었다. 산과 들에서 흘러내린 빗물과 가정에서 쓰고 버린 수챗물을 모아 강으로 보내는 물길이었다. 그 물은 천변의 풀이랑 나무의 목을 축이고, 송사리며 미꾸리를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 팽창과 인구 증가로 청계천은 썩은 물이 고인 죽은 하천이 됐으며, 사람들은 개천을 살려서 더불어 사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덮어서 외면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차량 통행 등 생활의 편리와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했다. 늦었지만 이제나마 죽음의 길이 아닌 삶의 길, 자연의 길을 찾은 것은 다행이다. 그 길을 찾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이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박경리 선생과 노수홍 연세대 교수 등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던 90년대부터 청계천 복원을 통한 생명 복원을 외쳤으며, 광야에서 외치던 이들의 목소리는 2002년 드디어 여론과 위정자들을 깨우쳤다.찻길을 걷어내고 만든 물길과 사람길은 생명을 부르고, 빌딩으로 꽉 막힌 도심에 맑은 공기를 흐르게 할 것이다. 벌써 청계천에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잉어가 힘차게 뛰놀고, 백로와 흰뺨검둥오리가 날아들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천변 산책로에서 깔깔대는 꼬마들의 웃음소리도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어울려 청계천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선 살아있는 개천에 걸맞게 더욱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계천 상류인 중학천과 백운동천의 복개판을 뜯어내 북악산과 인왕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청계천에 자연스럽게 이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고 남산의 빗물 등을 이용하면 한강에서 굳이 물을 끌어와 흘리지 않아도 청계천의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아직도 전부 또는 곳곳이 덮여있는 오류천과 시흥천, 도림천, 봉천천, 봉원천, 욱천, 사당천, 면목천, 우이천, 당현천, 방학천, 도봉천의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 안양천과 불광천, 홍제천, 전농천 등 덮개가 놓이지는 않았으나 뭇 생명이 살기에는 수질이 적합하지 못한 한강 지류들도 주민의 노력으로 생태계가 복원된 양재천처럼 하루빨리 건강하게 가꿔 나가야 한다. 어디 서울뿐이랴. 전국의 도시와 동네를 흐르는 하천과 내를 생명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청계천 복원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이다. 김종철/사회부 지역팀장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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