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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1 10:00 수정 : 2012.08.01 22:57

독일의 올레 비쇼프(위)가 1일 새벽(한국시각) 영국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81㎏급 결승전이 끝난 직후 감격에 겨워 주저앉아 울고 있는 김재범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무서운 집념이 낳은 유도 금메달

왼쪽 무릎·어깨·팔꿈치 부상에

한달 전 왼손 무명지 인대 파열

의사들도 “출전은 미친짓” 말려

결승전엔 마취제 맞고 올라가

베이징 승자 비쇼프도 ‘축하해’

“재범이는 재활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김재범(27·한국마사회) 선수가 31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81㎏급 결승에서 올레 비쇼프(33·독일)를 누르고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정훈 유도대표팀 감독은 안쓰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의사들도 말렸어요. 어떻게 저런 몸으로 올림픽에 나가냐고. 미친 짓이라고. 그러나 재범의 무서운 집념과 투지는….” 일반인 같으면 이미 입원해서 여러 곳을 수술하고 재활해야 할 몸이다. 특히 김재범의 몸 왼쪽 반쪽은 그야말로 ‘부상병동’이다.

왼쪽 무릎은 안쪽인대 파열로 덜렁거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비정상이다. 달리기를 못한 지 6주가 넘었다. 왼쪽 어깨는 더 심각하다. 2007년 이후 고질적으로 이상이 있던 왼쪽 어깨는 지난해 말 제주에서 열린 코리아 월드컵 국제유도대회에서 마침내 탈구됐다. 상대 업어치기를 방어하다가 왼팔로 착지했는데, 그것이 탈구로 이어졌다. 탈구되면서 인대까지 손상됐다. 세번 탈구된 어깨는 사실상 골절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훈련중에 왼쪽 팔꿈치가 고장났다. 매트와의 오랜 충격 탓인지 제대로 힘을 주기 어렵다. 뼛조각이 돌아다니고 있고 인대도 상했다. 런던올림픽을 한달 앞두고는 왼쪽 손가락 무명지 인대가 끊어졌다. 도복을 손가락을 이용해 잡아채야 하는 유도이기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성치 않다. 관절염 증세까지 있다.

김재범의 고장난 왼손 손가락들.

그러나 김재범은 그런 몸으로 올림픽을 포기하지 않았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 결승을 생각할 때마다 투지가 ‘활활’ 타올랐다. 믿음이 강한 기독교인인 김재범은 매일 밤 11시11분에 기도했다. 1등을 향한 강렬한 바람이었다.

“4년 전엔 죽기 살기로 운동했는데, 런던올림픽 앞두곤 살기를 포기하고 죽기로만 연습했다.” 한쪽이 망가진 김재범은 남모르게 한팔만을 쓰며 경기하는 연습을 했다. 왼쪽이 아픈 것을 표시 내지 않고 오른쪽 팔과 다리로 승부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팔로 유도 한 지 오래됐다. 올림픽이 끝나면 수술해도 상관없다”며 주변의 병원행 권고를 그냥 삼켜 버렸다. 김재범은 오히려 “지금 부상당해 다행이다. 어깨를 조심하지 않았는데 미리 다쳐 올림픽에 나서기까지 더욱 조심할 수 있게 됐다. 액땜했다고 생각한다”며 통증을 견뎠다.

금메달을 딴 김재범은 “오늘 아침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쳐도 부러져도 좋으니 오늘까지만 버텨 승리를 달라’고 기원했는데 그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런던에 와서도 진통제와 마취제를 맞지 않곤 연습을 할 수 없었고, 결승전에서도 왼팔에 압박테이프를 칭칭 감고 마취제로 감각을 죽여버렸다.

김재범은 그렇게 덜렁거리고 찢어지고 망가진 몸으로 4년 전 못 이룬 꿈을 마침내 이뤘다.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패배를 안겨 김재범으로 하여금 ‘와신상담’하게 만든 장본인은 공교롭게도 런던올림픽 결승 상대였던 비쇼프이다.

비쇼프는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김재범은 4년 전보다 훨씬 기량이 늘었고 힘도 좋아졌다”며 자신을 정상에서 밀어낸 김재범을 한껏 치켜세웠다. 결승전을 마치고 매트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김재범의 등을 토닥거리며 일으켜 세웠고, 뜨거운 포옹으로 상대방의 승리를 진정으로 축하해 준 비쇼프였다.

대부분의 결승전 패자들이 놓친 금메달이 아쉬워 울분을 토하면서 매트에서 내려가는 것과는 크게 대조됐다. 비쇼프는 시상식에서도 김재범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는가 하면, 관중들 앞에 서는 위치를 안내해 주는 등 끝까지 따뜻한 매너를 보였다. 비쇼프는 베이징대회 시상대 위에서도 김재범의 손을 번쩍 들어올려 화제가 됐다.

김재범도 “결승 상대가 비쇼프가 되길 기원했다”며 멋진 맞수인 비쇼프의 손을 잡았다. 집념의 금메달을 따내며 유도 영웅으로 거듭난 김재범은 세계선수권(2연패),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4연패) 우승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물론 앞으로 당분간은 김재범의 멋진 경기 모습을 보기 어렵다. 종합병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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