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7 17:36
수정 : 2018.10.17 20:34
최근 며칠 <한겨레> ‘가짜뉴스’ 기획기사에 언급된 유튜브 채널들을 훑어봤다. 예상보다 많은 시사·뉴스채널들이 구독자를 불러모으고 있었다. 가짜뉴스가 유통됐다는 한 극우성향 채널에 들어갔다. “문재인 도둑× 체포하라, 여적죄다 사형하라.” 사회자 선창에 맞춰 몇몇 촌로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문현동 금도굴 현장 출동’이란 제목 아래 시위 현장에 카메라 대고 2시간이나 찍어 올린 영상이 아직 걸려 있다. 구독자가 4만명이 넘었다. 구독자 15만명인 또다른 채널. ‘광주 5·18 재조사 북한군 개입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 있다. 당시 계엄군 중대장이었다는 출연자와 1시간여 대담하는 내내 ‘북한군 개입’은 당연한 사실로 다뤄졌다.
요즘 뜬다는 구독자 수 상위권 ‘보수채널’들도 열어봤다. 깔끔한 스튜디오에서 고정 진행자에 손님 불러놓고 뉴스와 논평 영상까지 구분해서 올리는 그럴듯한 곳도 있었다. 원로급 언론인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국내외 뉴스에 논평 섞은 영상을 발빠르게 찍어 올리는 채널도 보였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실’은 미미하고 ‘주장’은 창대했다. 굳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균형보도 형식도 안중에 없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나 사실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미필적 고의,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하는 생각으로 자기들끼리 방송하고 댓글 달고 있었다.
한겨레 보도 뒤 ‘가짜뉴스’가 대중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뉴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닌 거짓 뉴스다. 좁게는 거짓인 줄 알면서 조작한 뉴스를 말하지만 두부모 자르듯 나누기는 어렵다. ‘가짜뉴스 공장’이라 지적받은 에스더 쪽조차 한겨레 보도가 ‘가짜뉴스’라며 반박광고를 할 정도니 쉽지 않은 얘기다.
논란의 대부분은 가짜뉴스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진짜뉴스도 아닌’ 경우에 벌어진다. 조작하진 않았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알면서 퍼뜨린 뉴스, 완전 거짓은 아니어도 왜곡·과장된 뉴스도 있다. 오히려 가짜뉴스보다 좀더 광범위하고 고질적이다.
한겨레 탐사팀은 유튜브에서의 가짜뉴스 전파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가짜뉴스 7개를 선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현동 금괴 도굴설 등 4가지는 누가 봐도 가짜뉴스다. 그런데 나머지 3가지는 꼭 그렇지도 않다. 상당수 보수채널에서 여전히 진짜뉴스 대접을 받고 있다. <제이티비시>(jtbc) 태블릿피시 조작설은 논점을 달리해서 지금도 퍼지고 있다. 박근혜-정호성 대화 녹취록 내용이 밝혀져 최순실이 연설문 고치고 태블릿피시로 ‘말씀자료’ 받아본 사실이 판결문으로 확인됐는데도 조작설을 포기하지 않는다. 태블릿에서 고쳤다는 제이티비시 표현을 문제삼으며 시비를 이어가고 있다. 애초 <조선일보> 등의 주장이 불씨를 키웠다. ‘정부여당 개헌 뒤 고려연방제 추진’이나 ‘5·18 북한 특수군 개입’ 주장도 기존 보수언론들이 ‘사회주의 개헌’ 등으로 밑밥을 깔아준 덕에 여러 채널에서 새 버전으로 상영 중이다.
특히 북한은 냉전 이래 오랫동안 우리 언론한테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악마화한 탓에 굳이 사실 확인이 필요 없는 예외지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일성 사망설, 현송월 처형설 오보의 전통이 5·18 북한 특수군 개입, 풍계리 갱도 연막탄 흔적, 취재비 1만달러 요구 오보로 이어졌다.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가짜뉴스들이다.
1인 미디어 시대엔 누구나 이런저런 정보를 찍거나 써서 인터넷 공간에 올린다. 언론과 유사언론의 경계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최소한 ‘언론’으로 불리려면 사실 확인·검증 보도 원칙은 지켜야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고,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설사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해도 언론 책임은 면제된다. 이른바 명예훼손 면책을 위한 ‘상당성’ 법리다. 반대로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정보를 퍼뜨렸다면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쓴 기사는 ‘진짜 아닌’ 뉴스, 곧 넓은 의미에서 가짜뉴스일 수밖에 없다. 기성 언론들이 검증 없이, 사실이란 확신도 없이 작성한 ‘진짜 아닌’ 뉴스는 곧바로 가짜뉴스로 둔갑해 퍼져나간다. 이런 식으로 가짜뉴스 콜라보가 이뤄지는 위험한 생태계가 온라인에 강고하다.
법무부가 16일 가짜뉴스 적극 수사 방침을 밝힌 뒤 우려가 적잖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형사처벌보다 자율규제와 자정활동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계부터 진짜 아닌 뉴스는 서로 과감하게 비판해줘야 한다. 미디어 비평 활성화가 꼭 필요하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