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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9 21:59 수정 : 2019.01.09 22:03

누가 봐도 명백한 민간인 불법사찰은 모른척하다 뒤늦게 공무원 휴대폰 감찰 문제삼고 나서면 누가 수긍하나. 박근혜 청와대로부터 ‘기자 8명 사표’ 협박받고도 공개·비판커녕 되레 특종보도를 막았다. <조선>은 ‘할 말 하는 언론’ 구호 부끄럽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균형감이라도 갖춰야

‘장○○/ 1965(년생)/ ○○고/ …/ ○○법연구회 그룹의 핵심, 진보성향 법관들에게 강한 영향력 보유, 전략적 사고에 능하나 주장이 강경한 편은 아님’

‘한국환경재단/ 상임감사/ 김○○/ (임기) ’18.9월/ 반발(새누리당 출신)’

앞의 것은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사법농단 문건의 한 대목이다. 대법원 조사위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배제하기 위한 ‘사법행정권의 부적절한 행사’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문건 작성·실행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뒤의 것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동향을 적은 것으로 김태우 수사관이 표적감찰을 위한 자료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것이다. 청와대 쪽은 공공기관장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정당한 감찰권 행사라고 반박한다.

<조선일보>는 양승태 대법원이 부적절하게 법관 명단을 작성하고 사찰한 사실까지 드러난 지금도 ‘법관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논조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지난 12월27일치엔 1면 머리기사로 뒤의 문건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도 블랙리스트 만들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블랙리스트나 불법사찰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사법기관의 몫이다. 그러나 상식의 눈으로 보면 둘 다 블랙리스트이거나 아닐 수는 있어도, 뒤의 것만 블랙리스트이고 앞의 것은 아니라는 건 사실 왜곡에 가깝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부에 비판적이란 이유로 문화예술인 등 각 분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정원을 시켜서는 연예인들을 뒷조사 또는 세무사찰하고 출연 중인 방송에서 쫓아냈다. 기무사는 불법적으로 세월호 유족들을 도청·미행했다. 공공기관도 아니고 공무와 털끝만큼도 연결이 안 되는 그야말로 순수 민간인에 대한 블랙리스트와 사찰이니 모두 명백한 불법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불법에 1면 머리기사는커녕 제대로 된 비판조차 한 적이 없다. 거꾸로 이를 파헤치는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를 겨냥해 ‘정권에 대한 코드 맞추기’라고 조롱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사찰 때도 그랬다. 정부 비판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민간 사업자 김종익씨가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사찰당한 끝에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개입한 사실이 팟캐스트로 폭로되고 무마용으로 2천만원이 건네진 사실까지 추가 폭로되는 동안 조선일보 등은 아예 묵살하거나 조그맣게 축소보도했다.

국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건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또 언론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판단 잣대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누가 봐도 명백한 민간인 불법사찰은 모른척하다 뒤늦게 공무원 휴대폰 감찰을 문제삼고 나서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박근혜 정권 말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포착한 <티브이(TV)조선>은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최순실의 의상실 영상도 입수했다. 미르재단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실까지는 연속보도했으나 최순실 보도부터 제동이 걸렸다. 결국 <제이티비시>가 태블릿피시를 폭로하고 나서야 의상실 영상은 빛을 볼 수 있었다. 방상훈 사장은 당시 박근혜 청와대로부터 기자 8명의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받은 사실을 지난 3월에야 취재팀장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정권의 언론탄압이다. 그런데도 이를 공개하고 비판하기는커녕 거꾸로 특종보도를 틀어막았다. 결정적인 때 입을 닫았으니 ‘할 말은 하는 언론’이란 구호가 부끄럽지는 않았을까.

보수언론들은 독재정권 시절 권력에 굴복 또는 유착해 사세를 유지·확장했다. 그러다 민주화로 언론자유가 보장되자 스스로 언론권력으로 행세하려 했다. 선거 국면에선 심판 신분을 잊고 운동장에 뛰어들어 선수로 뛰기도 했다. 민주개혁 정권이 들어서 권언유착이 불가능해지면 금단현상 느끼듯 과도한 ‘공격 저널리즘’의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성장률 통계까지 왜곡하며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어렵게 이뤄진 북핵 협상 국면을 이어가려는 정부는 ‘북한 대변인’으로 깎아내렸다. 아베 일본 총리가 인도 총리 만난 건 ‘트럼프 헤지(위험회피) 외교’라면서도 우리 대통령이 시진핑 만나면 ‘한-미 동맹에 상처’ 낸다고 호들갑 떨었다. 조선일보 같은 거대언론이 사실을 조금 비틀면 유튜브에선 완벽한 가짜뉴스로 가공돼 퍼져나간다. 진실이 왜곡되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도 접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결국 언론은 사회적 흉기가 되고 만다.

‘1등 신문’ ‘최고 언론’이란 방 사장 신년사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균형감이라도 되찾기 바란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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