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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2 17:44 수정 : 2019.07.23 06:15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된 건 아니라던 일본이 말을 바꾸기 시작한 건 2000년 9월 ‘위안부’ 피해자들이 미국에 소송을 낸 뒤부터다.

경협자금이나 징용피해자 지원금은 불법행위 배상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당 기간 이어질 한일전 동안 ‘생존’ 위해 ‘자존’ 버리자는 식의 주장만은 삼가자.

7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보복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일본과 아베를 규탄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퍽’ 소리 나게 때리는데 옆에선 ‘계획되고 치밀한 공격’이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또 때려도 ‘어설픈 공격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외려 맞는 이를 말린다. 구경하던 아이가 ‘저러면 조용히 끝나나요?’ 묻자, 어르신 왈 ‘아니, 조폭영화 안 봤어?’ 한-일 갈등 보도를 꼬집는 지난 12일치 <한겨레> 만평 ‘오금택의 100㎝’의 촌철살인이 압권이다.

일본의 관점에서 보는 듯한 일부 언론과 야당의 태도는 불편하다. ‘정부발 폭탄’이라며 이번 사태를 촉발한 책임을 오롯이 한국 정부에 돌린다. 외교·군사·금융에서 우리가 ‘절대 열세’이고 일본은 ‘우리 등에 비수 꽂을 수단이 무궁무진’하니 ‘대통령은 고집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굴욕을 감수’하란다. 야당에선 ‘대통령이 싼 배설물은 대통령이 치우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한 이 분위기 영 이상하다. 일제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대우와 착취를 당한 건 우리 국민인데 마치 우리가 못할 짓이라도 한 것 같다. 일본 정부는 치밀하고 일사불란한데 우리 정부는 무능·무책임한 삼류라니, 그야말로 ‘전지적 아베 시점’에서 보는 관전평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붙은 최근 갈등의 뿌리엔 1965년 한일협정이 있다. 애초 일제 36년의 성격을 애매모호하게 봉합하고 넘어갔다가 반세기 만에 실밥이 터졌다. 일본은 합법이라지만 누가 봐도 ‘불법 점거’다. 협정과 3억달러로 개인의 배상 청구권까지 모든 게 ‘최종적으로 완결’됐다는 아베 정부의 주장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약하다.

일본 정부 스스로 협정 체결 직후부터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이란 입장을 밝혀왔다. 1965년 11월5일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은 “개인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중의원 일한특별위)고 했다. 1995년 8월27일 야나이 지 외무성 조약국장이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것이고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참의원 예산위)라고 한 발언도 속기록에 남아 있다. 일본 정부가 말을 바꾸기 시작한 건 2000년 9월. 황금주 할머니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필리핀 등의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미국 워싱턴 연방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뒤부터다. 그럼에도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7년 중국인 강제연행 사건에서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건 주목할 만하다.

유엔 국제법위원회는 2006년 ‘외교보호에 관한 규정 초안’을 총회에 냈다. 개인에 대한 침해를 국가 침해로 보던 기존 국제법 시각이 허구이고, 국가 간 우호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국제사법재판소도 2007년 이 규정을 기니와 콩고 분쟁 사건에 인용했다. 국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인권이나 청구권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게 국제법의 기류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헌법소원 결정문에서 유엔 국제법위원회의 ‘외교보호 초안’을 인용했다. 대법원도 헌법과 국제법 정신에 따라 반세기 넘게 억눌려 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과 청구권을 되살려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불법행위로 입은 개인 피해의 배상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은 헌법상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최종적 해석의 효력과 권위를 갖는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대법 판결 이후 대책 마련에 손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적잖다. 실제 피해자 쪽과 소통한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독도 방문에서 위안부 졸속 합의까지 이전 정부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대 어느 정부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이나 이에 따른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부인한 적은 없다. 한일협정 뒤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경협자금이나 2005년 민관공동위 뒤 정부가 징용피해자 등에게 제공한 지원금은 불법행위 배상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받을 돈 다 받고…’ 운운하는 건 아베식 논리다.

아베의 강경 조처는 한반도의 탈냉전, 남북화해 기류에 대한 대응 성격도 있다. 입지가 좁아지는 걸 보고만 있진 않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결국 냉전 시기 만들어진 한일협정 체제는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참의원 선거 뒤 ‘제대로 된 답을 가져오라’는 아베 발언에서 보듯이 ‘한일전’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대법 판결과 불매운동은 오히려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일이다. 그 기간 동안 ‘생존’ 위해 ‘자존’ 버리자는 따위의 주장만은 삼가자.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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