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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6 13:42 수정 : 2018.04.10 11:35

1994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골을 넣은 뒤 포효하는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https://youtu.be/XJ4qF0QkcT4

[최강의 약물의 유혹, 도핑의 과학]
(4) 에페드린: 교감신경흥분제로… 다이어트약으로…

1994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골을 넣은 뒤 포효하는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https://youtu.be/XJ4qF0QkcT4
디에고 마라도나의 긴 축구 인생에서 1993년은 암흑기였다. 당시 에프시(FC) 세비야 소속이던 그는 체중 관리를 하지 못해 그해 그의 경기력은 최저였다. 6월 한 경기 후반전에 교체 당한 그는 화를 참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감독과 논쟁을 벌이다가 감독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소속팀을 떠났다.

세비야 사람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미 경기장 밖에서도 문제가 많았던 터였다. 도심에서 시속 200킬로미터 속도로 포르쉐를 몰고, 술집에서 취객들과 시비가 붙고, 운동화를 신고 클럽에 들어가려다가 직원이 제지하자 "지금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이 신발에 키스하려고 난리인데"라고 말하는 등 사생활도 엉망이었다.

코카인을 흡입하며 어둠의 나락에 빠져 있던 그에게 얼마 뒤 아르헨티나가 구조 신호를 보냈다.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호주 대표팀과 겨루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그 해 11월, 3년 만에 국가 대표로 돌아온 그는 그 경기에서 전반 33분께에 상대 진영의 오른쪽 구석에서 왼발로 공을 감아 발보에게 완벽한 크로스를 올렸다. 헤딩 슛! 골인! 5분 뒤 호주에 한 골을 내줘 동점으로 플레이오프 1차전을 마쳤지만,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아르헨티나는 가까스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일등 공신은 당연히 마라도나였다.

이제 1994년 미국 월드컵은 마라도나에게 절치부심의 기회가 되었다.

“내가 뚱뚱하고 더 이상 위대한 마라도나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질렸어요. 이번 월드컵에서 진짜 디에고(마라도나의 이름)를 보게 될 겁니다.”[1]

마라도나의 호언장담은 빈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 12킬로그램을 감량한 그의 각오는 그리스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바로 입증되었다. 바티스투타의 두 골로 앞서고 있던 후반전 60분께, 그리스 진영의 페널티 아크에서 레돈도의 빠른 패스를 이어 받은 그는 먼저 왼발로 공의 속도를 줄인 뒤에 이어서 공을 차기 좋게 살짝 앞으로 밀었다. 왼발에 세 번째 걸린 공은 그리스 골키퍼가 손 쓸 새도 없이 골대의 오른쪽 상단에 꽂혔다.

1994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골을 넣는 장면. https://youtu.be/XJ4qF0QkcT4

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여봐란듯이 자축 의식을 펼쳤다. 양팔을 쫙 펼치고,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로 달려간 다음 크게 포효했다. 두 눈은 이글거렸고, 목에 걸린 금 목걸이는 출렁거렸으며, 얼굴 주변의 근육은 팽팽했다. 4일 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도 그는 직간접으로 두 골에 관여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활약은 거기까지였다. 5일 뒤 에페드린(ephedrine)에 양성 반응을 보인 약물 검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라도나는 쓸쓸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억울하게 빼앗긴 금메달

2016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온나라가 떠들썩했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사건에서 의료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청와대가 구입했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나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프로스카의 화제성(?)에 묻힌 약물이 하나 더 있었다. 최순실의 사무실에서 입수되었다고 보도된 염산에페드린 주사제이다. 일상에서 흔히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프로포폴 주사의 통증을 줄이려 했다, 마약인 필로폰(성분명; 메스암페타민)을 만들려고 했다, (비아그라 복용과 관련해) 음경지속발기증을 치료하려 했다 등 여러 추측이 넘쳐 났다.

에페드린은 인체에서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 흥분제로 작용하는 약물이다. 교감신경은 신체가 위급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대처하는 기능을 한다. 바로 앞에 송곳니가 번쩍이는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빨리 도망가기 위해 교감신경은 피부나 위장관으로 가는 혈액을 줄이고, 달리고 뛰어오르는 데에 중요한 심장과 팔다리의 근육으로 많은 혈액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심장은 더 빨리 뛰고, 혈압은 오르게 된다.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에페드린은 알레르기 질환이나 천식 환자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코, 인후, 부비동(코 주변 뼛속의 빈 공간)으로 가는 혈관을 수축해 콧물을 줄이고, 기관지를 확장해 호흡 곤란을 완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감신경을 활성화 하는 특성 때문에 운동 경기 분야에서 에페드린은 도핑 규제의 태동기부터 불법 약물로 분류되었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의 수영선수 릭 데몬트는 남자 자유형 400미터 경기에서 획득한 금메달을 에페드린 복용 혐의로 박탈 당했다. 그는 천식 때문에 에페드린이 포함된 약물을 복용한 것이며, 미리 미국 선수단에 알렸다고 항변했다. 선수단 의사가 약물 복용 사실을 관계 기관에 전달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지만, 금메달 박탈 결정은 유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데몬트 자신이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던 자유형 1500미터 경기까지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의 릭 데몬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례적인 제재의 배경에는 미국과 다른 나라 운동 경기 지도부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억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1987년 미국의 한 연구진은 논문 서두에 15년 전의 데몬트 사건을 소개하면서 에페드린의 경기력 향상 여부를 살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2] 연구진은 에페드린을 복용한 참가자의 심폐 기능을 다양한 지표로 살펴본 뒤 특별한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페드린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가 아닌 운동 능력을 직접 조사한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미국 한 연구진이 발표한 6개의 논문을 살펴보면, 에페드린은 산소 소비량, 탈진에 이르는 시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처럼 경기력을 평가하는 지표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3] 단 에페드린을 카페인과 같이 복용하면 운동 능력이 20~30퍼센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몬트는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올림픽 때마다 번번히 “약물 사기꾼(drug cheat)”으로 소개되었다. 다행히 2001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그가 뮌헨 올림픽에서 치료 목적으로 약물을 복용했으며, 선의의 피해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도 30년 전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금메달을 돌려주는 것까지는 여전히 꺼리고 있지만). 앞으로 릭 데몬트란 이름을 마주치거든 다른 내용으로 기억해 보자. 남자 자유형 400미터 경기에서 최초로 4분 기록을 돌파한 선수로 말이다.

살 빼려다 사람 잡는다

2003년 2월 정규 시즌을 앞두고 미국프로야구(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프링 캠프가 따뜻한 플로리다 주에 열렸다. 전해에 메이저리그 선수로 승격되었던 스티브 베클러는 훈련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 응급실로 곧바로 옮겨졌지만, 23세의 젊은 선수는 다음날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열사병이었다. 며칠 뒤 시행된 부검 결과에서 심장 비대, 간기능 이상, 고혈압, 과체중과 함께 에페드린의 복용이 죽음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에페드린과 관련된 신고 건수(A), 주요 영향(B), 사망자 수(C)의 변화 추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제공
베클러는 겨우내 불어난 체중을 줄이려 거의 먹지 않으면서 에페드린을 복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에페드린은 체중 감량제(다이어트 약)로 인기가 높았다. 교감신경 흥분제로서 신체의 기초 대사량을 증가시키고, 지방 연소를 촉진시키기 때문이었다. 의문시 되는 경기력 향상 효과에 비해 체중 감량 효과는 확실해서 에페드린 단독 복용만으로도 월 평균 몸무게를 0.6킬로그램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그러나 에페드린은 뚜렷한 긍정적 효과만큼 부작용도 많이 가지고 있다. 50개의 논문을 살펴본 결과, 정신과적 증상, 자율신경계의 이상, 소화기계 증상 및 심계 항진의 위험성이 2.2~3.6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에페드린의 규제를 시도했고, 2004년 18,000건 이상의 부작용 보고 사례를 근거로 에페드린이 함유된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판매를 금지했다. 이후 국가독성정보시스템(NDPS) 신고 건수, 주요 영향(목숨을 위협하는 증상이나 이로 인한 후유증), 사망자의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4]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이유로 에페드린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의료가 이원화 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다. 에페드린은 한의학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마황(麻黃)에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특히 체중 감량 목적으로 자주 처방되면서 용량이나 안정성을 두고 의료계와 한의계 사이에 설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에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마황이 들어간 다이어트 한약을 먹고 부작용을 겪은 사례를 방송하자 논란이 다시 일었다.[5] 대한한의사협회는 미국 FDA도 의약품의 경우 에페드린을 150mg까지 허용한다며, 대한한방비만학회의 지침(1일 마황 4.5~7.5g(에페드린 90~150mg)대로 처방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다이어트 한약은 한의사의 처방에 의해 복용하는 전문의약품이므로 미국 FDA의 제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의료계는 한의계의 기준이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FDA가 의약품에 에페드린을 150mg까지 허용한 것은 맞지만 이는 단기간의 기관지 확장 등에 해당될 뿐 체중 감량은 적응증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즉 치료를 위해 안정성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면서 제한적으로 처방하는 성분을 장기간 처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맞받아쳤다. 또한 다이어트 한약은 사실상 일반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의 영역인 만큼 미국 FDA의 판매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의료계와 한의계 모두 주장의 근거로 미국 FDA를 언급하고 있다. 의료 환경이나 인종 구성이 우리나라와 다른 미국의 자료를 근거로 양측이 상반되는 아전인수 해석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의 보도 이후 한의계의 반박, 의료계의 재반박의 순서로(혹은 역순으로) 잊을 만하면 재현되는 논쟁을 이제는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뒷짐만 진 채 의료계와 한의계에만 문제를 맡겨두지 말고 에페드린을 둘러싼 논란 해결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피해자를 막기 위한 노력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 에스케이(SK) 와이번스의 내야수 임석진은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부터 36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두 달 전에 시행한 도핑 검사에서 에페드린이 검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금지 약물을 복용한 이유는 마라도나나 베클러처럼 경기력 향상이나 체중 감량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데몬트처럼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만성적으로 앓던 화농성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다 발생한 일이었다.

임석진이 3월에 처음 방문했을 때 운동 선수에게 문제가 되는 성분은 빼달라고 요청한 뒤 한약을 건네 받았다. 하지만 두 달 뒤 그가 손가락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자, 한의원은 금지 약물 검사가 없으리란 생각에 마황이 포함된 한약을 처방했다. 별 다른 의심 없이 한약을 계속 복용하던 그는 8월에 시행된 도핑 검사에서 적발되었다. 선수나 구단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다행히 정상 참작이 이뤄져 징계는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임석진에게는 ‘불법 약물 복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임석진의 안타까운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때 천식,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나 경기력 향상, 체중 감량 목적으로 사용되던 에페드린을 이제는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마황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화된 의료 현실에서 의료진은 제2의 임석진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구조적인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 아니겠는가.

[1] Verhovek, S.H., WORLD CUP '94;After Second Test, Maradona Is Out of World Cup. New York Times, 1994. https://www.nytimes.com/1994/07/01/sports/world-cup-94-after-second-test-maradona-is-out-of-world-cup.html.

[2] DeMeersman, R., D. Getty, and D.C. Schaefer, Sympathomimetics and exercise enhancement: all in the mind? Pharmacol Biochem Behav, 1987. 28(3): p. 361-5.

[3] Shekelle, P.G.,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ephedra and ephedrine for weight loss and athletic performance: a meta-analysis. Jama, 2003. 289(12): p. 1537-45.

[4] Zell-Kanter, M., M.A. Quigley, and J.B. Leikin, Reduction in ephedra poisonings after FDA ban. N Engl J Med, 2015. 372(22): p. 2172-4.

[5] 이인복, 다시 불붙은 '마황전' 의-한 아전인수 해석 논란 메디컬타임즈, 2017. http://www.medicaltimes.com/News/1110803.

최강/ 정신과의사, 서울명병원 정신과장 ironchoi@hanmail.net

한방비만학회의 견해: 한방 비만 처방의 ‘마황’ 약재 안전성 논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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