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정유경의 오도가도_‘초박빙 역전극’ 창원성산 보궐선거
정당은 얼어붙고, 언론사는 불붙었네
4·3 보궐선거 창원성산 민주·정의당 단일후보로 결정된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3월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반송시장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상정 전 대표, 여 후보, 이정미 대표. 연합뉴스.
한일전보다 스릴 넘쳤다. 3일 밤 벌어진 4·3 보궐선거 창원성산 지역 개표 상황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아슬아슬한 ‘초박빙’ 승부 속에 당 관계자들은 숨소리마저 얼어붙었고, 윤전기를 멈춰 세운 정치부 기자들은 애가 탔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막판까지 혼전 양상이었던 선거는 없었다.” 개표율 99.98%에야 뒤집힌 승부, 단 504표 차이였다.
_______ ‘진보 홈그라운드’ 기대 부순 전반전 판세 분석부터 정의당엔 암운이 드리웠다. 투표 마감 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3월31일~4월1일 700명을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조사한 결과 오차범위 내에서 한국당 강기윤 후보가 앞섰다는 예측조사를 발표했다. 투표함이 열린 9시, 개표율 2.03% 상황에서 실제로 강 후보가 50.39%로 선두에 나서자 정의당은 침묵했다. 초반 개표라지만, 여론조사 선두를 달려왔던 여 후보가 시작부터 10%포인트 거리를 두고 40.12%로 뒤처졌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 ‘1-1 반반 무많이’에 승부수를 걸었던 기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부 언론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강기윤은 누구인가’를 부랴부랴 예비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정의당은 “저녁 8시까지 투표가 진행된만큼, 퇴근길 노동자의 몰표가 남아있다”며 별렀지만, 4만여표 개표만을 남겨둔 10시까지도 3000표 격차를 따라잡지 못했다.
야근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미리 준비했던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한국당의 2-0 승리 초안을 조판 틀에 앉혔다. 신문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밤 10시까지 기사를 마감해야 11시까지 편집 및 인쇄 과정을 거쳐 선거 소식이 실린 지면을 지역에서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율을 새로 고침하고, 각 당이 분석하는 승패원인을 채웠다. 밤 10시 기준 개표율 34.60%에 강 후보가 48.02%, 여 후보가 42.95%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_______ 잠깐, 반전 없는 영화 아니었어? 후반전 10시 18분께, 한국방송(KBS)이 ‘강기윤 유력’을 띄웠다. 통영·고성에선 일찌감치 득표 선두에 나선 정점식 후보가 ‘당선 확실’이었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한국당 의원들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기자들 사이에선 정의당이 패배에 대비해 사전에 준비한 감사인사 문자가 인용됐다.
“우리의 꿈은 좌절된 것이 아니라 단지 1년 늦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강판 직전 송고를 마치고 현장 기자들이 고개를 든 10시40분, 표차는 점점 줄어들어 1400표차로 좁혀지고 있었다. 사전투표함이 개표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전’ 소식은 개표가 이뤄지던 창원 현장에서 먼저 타진됐다. “여 후보가 역전했다.” “700여표 차로 보인다.” 옆집 함성에 화들짝 놀라 역전골을 예감하듯, 시차를 둔 기자들의 비명은 국회 부스 곳곳에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서울에 있는 양 당 관계자들은 여 후보가 441표차로 강 후보를 바짝 추격한 개표율 94%에서 한동안 잠정집계가 멈추면서 바짝 긴장했다. 11시19분,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끝까지 봐야겠다”며 ‘끝나지 않은 경기’를 선언했다. 1면이 바뀔 지도 모르는 상황, 신문기자들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했다. 방송기자들은 절로 ‘막장 드라마’ 시청률을 떠올렸다.
11시30분, 멈췄던 개표율이 99.98%로 바뀌면서 여 후보가 처음으로 선두로 치고 나섰다. 100% 개표 뒤 두 후보의 표차는 단 504표였다. 45.75%대 45.21%.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를 지킨 이정미 대표는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심상정 의원의 눈에도 눈물이 비쳤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월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때 당명이 적힌 붉은 웃옷을 입고 경기장 내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제공.
_______ 막판 ‘득점’ 쏟아진 사파동
‘진보정치 1번지’ 창원에서 한국당의 선전인가, 집권 3년차 ‘정권심판론’에도 ‘노회찬 지역구’를 지켜낸 정의당의 분투인가를 두고 의견은 엇갈린다. 창원은 분명 권영길·노회찬 의원을 탄생시킨 노동자의 도시이지만, 범진보진영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했을 때면 보수당에 바톤을 넘겨 왔다. 한국당의 강 후보가 19대 때 총선에서 당선되는 등 고정 지지세도 탄탄한 반면, 여 후보의 인지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막판 유세과정에서 논란이 된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오세훈 전 시장의 발언, 경남FC 선거유세 논란 등은 막판 진보의 결집을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막판 여영국 후보에게 역전표를 몰아준 개표함은 상남동과 사파동의 것이었다. 특히 노동자 계층이 밀집해있는 사파동은 여 후보의 최다 득표지다. 강 후보보다 1700여표를 더 얻어 역전의 발판이 됐다. 경남FC의 창원프로축구센터 경기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창원성산에 출마한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3일 창원시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해지자 이정미 대표, 윤소하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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