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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8 05:03 수정 : 2018.05.08 11:58

[네이버에 갇힌 대한민국] 기자가 체험한 ‘댓글 알바’

간판 없는 사무실서 10여명 작업
수시로 IP 바꿔가며 댓글 올려
사장 “아이디는 산 것…월급 130만원”

“정말 편한 곳입니다.” ‘편한 일’ 할 사람을 ㅈ사는 굳이 구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댓글’, ‘댓글 작업’으로 검색했더니, ㅈ사의 공고가 눈에 띄었다. ㅈ사는 ○○명을 뽑는 구인 광고를 내며 아르바이트생이 할 일을 공지했다. ‘바이럴 마케팅 댓글 작성, 프로그램 작업 및 글 작성’. ㅈ사에 전화를 걸었다. 실제로 네이버에서 댓글 조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수화기 너머의 젊은 남성은 “면접을 보러 오라”고 짧게 답했다.

면접 당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의 한 위성도시에 있는 주택가로 향했다. 사무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간판이 없었다. 행인의 도움을 얻어 찾은 사무실은 한 대형 커피전문점 위층에 있었다. 20~30대로 보이는 남녀 1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방문자의 인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각자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면접 보러 오셨나요?” 주변을 계속 서성이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성 한명이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캐주얼 차림의 사장 ㄴ씨는 본인을 29살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을 포함한 3명이 동업하고 있다고 했다. 첫 월급은 130만원이었다. 잘하면 빠르게 월급이 오를 것이고, 반년 뒤에는 월 18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점심시간은 1시간. “처음에는 댓글만 달고, 나중에 차차 ‘프로그램’ 쓰는 방법도 배우게 될 거예요.”

이날 오후 일을 배워보기로 했다. ㄴ씨는 댓글 달 곳을 먼저 소개했다. ‘금융○○○’ 등 대출 알선 카페 네곳이었다. “(대출 알선)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에 댓글을 달면, 이 카페가 활성화된 것처럼 보여서 네이버 검색 결과 상위에 잡혀요.” 댓글을 달아야 할 게시글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미리 올려둔 내용이라고 했다. 매크로를 통해 ‘개인 회생’ 등 키워드를 넣어서 카페에 글을 올리면, 아르바이트생이 그 글에 댓글을 단다. 두 대의 컴퓨터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린다고 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자동화된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이 컴퓨터들은 스스로 글을 썼다. “개인 회생 상담되나요?”라는 식으로.

본격적으로 댓글 다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디 20여개를 받았다. ㄴ씨는 “아이디는 우리가 산 것”이라며 “댓글을 달 때 아이디마다 아이피(IP)를 바꿔줘야 한다”고 했다. 동일 아이피로 글을 올릴 경우 네이버가 이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피 바꾸기는 쉬웠다. 우선 휴대폰 유에스비(USB) 테더링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리고 스마트폰 ‘모바일 데이터’ 항목을 껐다가 켜면 아이피가 바뀐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아이피를 활용해 댓글을 쓰면 된다.

이제부터 단순 반복. ‘글쓴이님 대출 잘 받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따위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자문자답 댓글’로 인터넷을 도배하다가, 게시글에 적힌 대출 관련 키워드로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다. 네이버 카페 중 상단에서 5~6번째에 익숙한 게시글이 나타났다. ㅈ사가 매크로를 써서 올린 글이다. 그 밑에 내가 단 댓글도 있었다. 매크로 프로그램과 댓글 아르바이트생의 합작이 이뤄낸 ‘검색 상위 노출’인 셈이다. 댓글 달 말도 더 떠오르지 않고, 단순 반복의 따분함이 밀려올 때쯤 체험은 끝났다. 일을 마치고 사장 ㄴ씨에게 “이렇게 매크로로 작업을 하면 포털·당국 제재에 걸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규제하긴 하겠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정식 출근은 하지 않았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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