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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8 22:22 수정 : 2018.05.08 22:54

네이버에 갇힌 대한민국 ② 큐레이팅 언론 권력
매체 579곳서 하루 5만건 기사
네이버, 약 47건 골라 첫화면 배치
“좋은 기사보다 제목으로 선정”
클릭수·출고량 위주 편집 방침에
네이버 맞춤형 ‘기레기’로 전락

‘1000 대 1’. 네이버 메인 화면에 기자 이름 석자가 새겨질 확률이다. 네이버와 제휴를 맺은 매체 579곳(인링크 124곳)은 하루 평균 약 5만건의 기사를 쏟아낸다. 모바일과 피시를 통틀어 첫 화면(뉴스홈, TV연예, 스포츠)에 노출될 수 있는 기사는 많게는 200개 정도. 인공지능 기반 뉴스 추천 시스템인 에어스(ARIS)로 자동 배열되는 기사를 제외하면, 편집자가 직접 선택하는 기사는 약 47개다. 네이버 쪽은 “뉴스홈 메인은 인링크 매체에서 보낸 기사 중에서만 선정한다”고 밝혔지만, 아웃링크 매체 역시 대부분 인링크를 원한다는 점에서 모두 메인을 향한 경쟁자라고 볼 수 있다. 인링크 매체의 기사 수로 집계하면 경쟁률은 절반 정도로 추정되지만, 이 역시 치열한 확률이다.

‘1000 대 1’이라는 경쟁률은 네이버의 과도한 편집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사가 메인에 노출돼야 트래픽이 올라가고 수익으로 이어지는 온라인 매체들은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포털 메인(첫 화면)에 걸리는 기사를 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과 표절, 무의미한 단독 경쟁이 벌어진다. 주로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일은 아니다. 이런 식의 저질 기사들이 포털 뉴스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진지한 저널리즘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여론 독점 현상이 공론장의 질을 추락시키고 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무의미한 ‘단독’ 남발 온라인 매체들은 네이버 메인에 노출되려고 자극적인 제목을 넘어 무분별한 ‘단독’ 기사를 쏟아낸다. 네이버에서 ‘단독’을 키워드로 제목을 검색했더니 2018년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100여건이 쏟아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을 기사화하면서 ‘단독’이라고 쓰거나, 배우 조재현이 낸 공식 입장문을 ‘단독’이라고 붙여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연예 매체 ㄱ 기자는 “‘단독’을 붙이면 메인에 잘 걸려 단독성이 아니어도 무조건 붙인다”며 “온라인에서 ‘단독’은 뭐든 처음 보도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끼리 차라리 ‘1빠’로 쓰자는 자조 섞인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단독’은 ‘단독 그 후’, ‘단독 종합’, ‘최초 포착’, ‘공식 입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 검색어 기사 쏟아내기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숙주 삼아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는 것도 출고량을 늘려 기사를 상위에 노출시키려는 전략이다. ㄴ 기자는 “화제를 키워드로 관련 기사를 쏟아내면 메인에 오를 가능성이 높고 트래픽도 올릴 수 있다”며 “검색어 기사는 취재하지 않고도 많은 기사를 쏟아낼 수 있어 요긴하다”고 말했다. 실제 주요 업무도 검색어 쓰는 걸로 시작한다. ㄴ 기자는 “메인에 걸릴 때까지, 회사가 원하는 트래픽을 채울 때까지 계속 쓴다”고 말했다. 휴일에는 ‘어뷰징 1조’, ‘어뷰징 2조’로 나눠 번갈아 쓰는 매체도 많다. 4일 ‘백상예술대상’에서 논란이 된 배우 정해인 관련 기사는 이날 하루 130여개가 쏟아졌다. ㄷ 기자는 “네이버가 2014년부터 클러스터링(유사한 기사를 몇몇의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에는 관련 기사를 단락으로 묶어 메인에 노출하기 때문에 개인사, 과거, 주변인 이야기까지 다 끄집어내 최대한 많은 기사로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 홍보자료 컨트롤C+컨트롤V=내 기사 홍보대행사에서 보내오는 보도자료를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화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요즘 방송사들은 연예, 드라마에 한해 프로그램별로 홍보대행사를 따로 둔다. 이들은 방송이 끝나면 보도자료를 3~4건 작성해 기자들에게 메일로 뿌린다. 작가, 피디, 배우 등의 인터뷰를 대신 해서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뿌린 보도자료를 기자들은 말만 조금 바꾸거나 그대로 복사해 자신의 바이라인으로 내보낸다. 네이버는 이런 기사를 메인에 걸어준다. 6일 네이버 모바일과 피시 연예면 메인에 걸린 예능 프로그램 <뜻밖의 큐(Q)> 관련 기사는 홍보대행사에서 보낸 내용을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기사화한 것이다. 제목도 보도자료에 있는 여러 개 중에서 골랐다. 7일 드라마 <기름진 멜로> 홍보대행사에서 보낸 보도자료 ‘첫방 데이 <기름진 멜로> 공복으로 시청 금지! 관전포인트5’도 반나절 만에 똑같은 내용으로 10여개의 기사로 나왔고, 그중 하나는 네이버 연예 메인에 걸렸다.

■ ‘메인’의 권력…“네이버가 부추겨” 네이버 쪽은 메인 선정 기준에 대해 “클러스터링 방식으로 추천된 뉴스들 중 주요 뉴스를 최종 선택, 편집해 메인 페이지에 노출한다. 편집자들은 오랜 기간 뉴스 편집을 담당해온 전문가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 기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한 기자는 “편집자가 내용을 읽고 좋은 기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만 보고 정하는 것 같다”며 “네이버가 클릭 수 위주로 편집하고 사진, 줄거리 등 사생활 기사를 메인에 주로 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베낀 기사’, ‘티브이 줄거리를 쓴 기사’ 등을 자체 기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네이버의 공식 입장이지만, 이런 기사들도 네이버 메인에 자주 걸린다. 인터뷰를 1, 2, 3으로 쪼개어 내보내는 것은 네이버에 긴 기사는 잘 걸리지 않기 때문이고,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연예인 사진을 기사화하는 것은 메인에 잘 걸리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2017년 1월 ‘실시간 급상승’ 순위를 10위에서 20위로 늘리는 등 어뷰징을 부추겨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네이버는 클릭 수가 광고 수입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우리 사회 미래에 심각한 위협 자극적인 가십성 기사의 범람은 ‘기레기’를 양산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저질 기사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사고 폭을 좁히고 나아가 미래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지적한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자극적이고 재미만을 좇는 기사 위주로 소비하게 되면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에 의존해서 행동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는 연예 매체의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양질의 저널리즘이 퇴화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질 낮은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들은 늘어나고, 권력감시 기능 등을 해온 전통적인 언론사들은 수익성이 나빠지는 등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포털의 폐해가 큰 만큼 여러 방안을 열어놓고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한 탈출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박준용 박다해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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