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1 10:36
수정 : 2018.05.11 11:00
[네이버에 갇힌 대한민국] ④여론 생태계 다시 짜자
네이버·다음이 군림해온 20년
이용자들 포털에 중독된 사이
언론사들 혁신 동력 잃고 표류
여론 조작에 무력한 디지털세상
디지털 공론장, 새 대안은…
뉴스 미끼삼아 몸집 키워온 포털들
뉴스이용 데이터 등 독점 풀어야
정부도 뉴스 공공성 살릴
‘디지털 콘텐츠 유통원’ 검토할 필요
태초에 포털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한 이후 한국 사회의 인터넷 경험은 네이버와 카카오(다음), ‘빅2’ 사업자의 성장 역사 그 자체다. 전문가들은 온 국민이 네이버와 다음을 선택한 이유로 ‘이메일 서비스와 지식인’을 꼽는다. 1990년대 말(1997년 5월 한메일 서비스 개시), 사람들은 ‘이메일 주소’를 얻기 위해 다음(당시 한메일)에 가입했다. 의사소통 방식의 혁신적 변화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식in(인)’(2002년 10월 서비스 개시)에서 백과사전적 답변을 얻고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네이버로 모여들었다. 성숙되지 않았던 당시 검색 환경과 부족했던 한국어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키보드에 두드려대고 또 옮겼다. 두 사업자는 그 자리를 선점한 ‘지대 효과’로 지금까지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해왔다.
이메일이 시들해지고 지식인이 뜨면서 포털 권력은 다음에서 네이버로 넘어갔다. 이메일과 지식인 다음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 가장 중요한 ‘미끼’가 뉴스였다. 국내 포털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제공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는데, 뉴스는 그 이야깃거리의 원천이었다. 특히 네이버는 언론사들과 특별한 ‘개별 계약’을 맺어 언론사들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가 검색시장 7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독점을 구축한 데는 뉴스의 영향이 컸다.
한국에서 포털의 뉴스 지배력은 무려 77%에 이른다.(한국언론재단 보고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한국’) 언론사 누리집을 직접 방문해 뉴스를 보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언론사 직접 방문율은 핀란드 64%, 스웨덴 52%, 덴마크 50% 등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포털이 편집한 뉴스만 보고 있다. 구글이 검색 서비스에 기반한 플랫폼 사업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한 사이, 네이버는 뉴스 독자를 네이버 안에 가두고 쳇바퀴처럼 돌리는 모델을 선택했다.
종이가 아닌 온라인에서 뉴스를 읽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네이버만 몸집을 불렸다. 기존 언론사들의 수익성은 점점 더 나빠졌다. 인터넷 도입 초기에 콘텐츠를 헐값에 넘겨버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직접 생산하는 언론사들의 재정이 취약해지면서 저널리즘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자본에 포섭될 위험성도 덩달아 커졌다. 클릭 수 위주의 포털 뉴스 운영에 올라탄 온라인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저널리즘 위기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여론 플랫폼을 독점한 네이버는 정치권력의 먹잇감이 됐고, 민주주의 후퇴마저 불러왔다.
지금껏 포털에 길들여진 한국 풍토에서 언론이 갑자기 디지털이란 망망대해의 생존자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누리집은 질 낮은 광고로 뒤덮여 있고, 댓글은 댓글대로 관리가 안 될 거라는 얘기다. 언론은 지난 20년 동안 포털에 열정적으로 뉴스를 납품해왔지만, 온라인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자생적 수단과 노하우를 제대로 경험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더 빨리, 더 많이 쓰는 것’밖에 없는 디지털 회로에 길들여졌다. 간헐적으로 디지털에 적합한 콘텐츠로 혁신하려는 노력이 있기도 했지만 늘 흐지부지됐다. 뉴미디어 전문가인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언론은 끊임없이 큐레이션 서비스를 바라온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는 혁신의 힘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지금은 “포털 체제 20년을 끝내고 다른 관문 앞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유아기부터 포털에 포섭돼 다른 어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한국 언론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그 관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합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뉴스가 공공재라는 사실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언론은 민간 영역이지만 동시에 공공재다. 정부와 구별되는 목소리로 공적 영역을 감시하고 진작시키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 언론은 중요한 제도이며,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주권을 상징적으로 대리하는 결사체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는 말이다.
뉴스가 공공재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그 뉴스를 디지털에서 어떻게 유통해야 할지에 대해 정부를 포함한 온 사회가 국가적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신문유통원’을 설립했던 경험을 살려 ‘디지털 콘텐츠 유통원’(가칭) 같은 언론사 공동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사가 공론장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포털 의존도를 벗어나 정보를 생산하고 한편으로 유통까지 고민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언론사 누리집을 사용자 친화적으로 구축하는 목적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언론사 누리집이 뉴스만이 아니라 토론과 공감을 나누는 커뮤니티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뉴욕 타임스> 혁신보고서 같은 새로운 시도가 국내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포털이 상상력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론사 사이트 자체가 포털이 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실험과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의 책임론도 부각된다. 포털만 갖고 있는 ‘뉴스 관련 독자 데이터와 뉴스 검색 알고리즘 등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지금 디지털에서 누가 기사를 읽고 있는지, 어떤 경로로 퍼져나가는지 그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알지 못한다. 포털이 그동안 공공재인 뉴스에서 발생한 막대한 이익을 사유화해왔으므로 그 사회적 수혜를 공공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설계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김동원 정책실장은 “네이버는 뉴스 편집에서 손을 떼더라도 언론사들이 디지털 혁신을 실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빠져야 한다”며 “20년간 축적해온 뉴스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를 공적으로 환원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H6s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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