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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0년씩과 20년씩의 학번 차이를 둔 세사람이 2일 저녁 만나 자신이 다니던 대학 재학 시절과 요즘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87학번인 변호사 최재원씨, 올해 0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할 고3년 이다연양, 97학번인 회사원 신동영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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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무대’ 거리-홍대앞-온라인으로
여기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1987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에서 대학 1학년을 보냈고, 또 한 사람은 홍대 앞 클럽에서 대학 새내기로서 1997년을 맞았다. 나머지 한 사람은 2007년 올해 설렘을 안고 대학의 문턱에 들어선다. 10년씩의 간격을 뛰어넘은 이들이 지난 2일 저녁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 모였다. 20년의 세월. 그동안 변화한 대학, 변하지 않은 대학이 이들의 화두였다.
군복과 안개, 80년대의 기억
최재원=80년대 대학시절의 떠오르는 이미지는 카키색 군복과 희뿌연 안개입니다. 학교 안에는 군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가 많았고, 교문 앞에도 군복 입은 전경들이 항상 대기했습니다. 집회가 있으면 양쪽의 군복이 대치하고, 희뿌연 안개처럼 최루탄이 터졌죠. 그렇게 대학사회는 굉장히 칙칙했지만, 그 속에서 대학생들은 사회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작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20~30%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 70%의 소극적인 학생들은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친구들의 자유로운 개성이 억압되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에게 대학은
87학번- 사회변화 주도했지만 개성은 억압
97학번- 뭐든 할수 있지만 뭘 할지는 몰라
07학번- 취업 위해 지식이나 교양 쌓는 곳
신동영=저는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80년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는데요. 당시에는 많은 선배들이 거리로 뛰쳐나갔고, 고통을 받은 만큼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억눌렀던 감정과 생각을 90년대에 발산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강한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이다연=저는 80년대를 교과서에서 배웠죠. 90년대를 80년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어떤 이미지가 없는 것 같아요. 80년대가 워낙 색채감이 강렬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90년대가 혼란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소줏잔을 엎어놓는 90년대 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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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38)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87학번. 스무살 때는 “내가 사회변혁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를 고심했고, 마흔을 앞둔 지금은 아이들 교육 문제와 새로운 법무법인을 만들어 독립할지를 고민 중이다. 현재 법무법인 백상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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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저는 음악을 아주 좋아 하는데, 90년대는 듀스나 서태지 등이 출현하면서 ‘구리구리한’ 댄스음악에서 ‘세련된’ 음악이 나타났고, 홍대앞 인디밴드도 시작됐죠. 개인주의도 팽배하기 시작했구요. 80년대 선배들을 보면 대학에 가서 반드시 읽어야 할 교양서적이 있었잖아요. 우리 때는 교양서적 보다는 하이텔, 나우누리를 통해 각자의 취향을 찾아 그룹을 형성하는 경향이 나타났어요. 또 그런 것에 대해 일종의 면죄부도 있었는데, 정치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최=제가 1학년 때는 학교에 집회가 있으면 우리 대학 학생으로만 1만2000명까지 모였어요. 당시엔 자기가 잘하거나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러다가, 90년대에 동문회에 갔는데, 91학번들 가운데 소줏잔을 상 위에 엎어놓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소주는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죠. 우리 때는 선배가 주면 먹는 거였는데, 그 때 “아, 90년대 학번 애들은 다르네”하고 생각했어요.
입학 전에 ‘온라인대학’에 입문하는 07학번
신=인터넷도 대학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6대4 정도의 비중으로 영향을 미쳤어요. 당시 피시 통신은 그래도 오프라인을 전제로 하고 공동체가 형성되었죠. 그런데 2000년대로 넘어와서는 온라인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간 느낌이에요.
최=80년대엔 전면적인 만남 뿐이었죠. 대부분 술자리였죠. 미팅을 하면 학보를 주고 받았는데, 학보가 1주일에 한번 나오니까 답장을 1주일 넘게 기다렸죠.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의 설레임이 있었죠.
이=저는 수시로 작년에 대학에 합격했는데요. 싸이월드에 벌써 학교 클럽이 만들어져 있어요. 입학 전이지만 얼굴 한번 못본 대학 친구와 서로 반말을 하고 놀아요. 그게 이미 하나의 대학이에요.
신=저는 1학년때는 과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친구들하고 당구를 치면서 친해지다가, 2~3학년 때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하면서 놀았죠. 요즘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연결되는 방식을 보면, 처음에는 메일에서 카페, 메신저, 핸드폰 문자,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로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이=요즘엔 친구들과 인터넷에서 맺는 관계가 오프라인에서도 영향을 미쳐요. 가령 방학이 지나고 갑자기 친해진 애들이 있는데, 방학 중에 인터넷에서 놀면서 친해진 거죠.
최=제가 대학 다닐 때는 일년에 많아봐야 편지 30통쯤 주고 받았을텐데 요즘엔 그만큼 많은 문자를 하루에 주고 받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디지털방식의 소통이 더 가볍다고만 단정짓긴 어려워요. 단지 다른 방식의 소통이겠죠.
‘구린’ 선배, ‘쿨한’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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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영(28)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97학번. 스물살 때 꿈은 “록스타가 되어서 가요톱텐에서 1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지나간 90년대말 대학은 그에게 “뭐든 할 수는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주식회사 와이더댄에서 음원 저작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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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80년대에는 선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어요. 입학 전에 신체검사나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데, 거기서 선배들이 접근을 하죠. “나랑 같이 공부해보지 않을래?” 하고요. (웃음) 그러면서 함께 술마시고, 집회를 나가고, 선배들의 본을 받게 되죠.
신=제 경우에 선배란 열심히 밥 사주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렇게 조금 지내다 보면 인기 있는 선배들이 도드라져요. 보통 권위적이지 않고,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죠. 후배들은 선배들을 보면서 속칭 ‘구리다’, ‘쿨하다’라는 식으로 평가했죠. 피시 통신의 대화방식이 대학에서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예의는 지키지만. 별다른 강요가 없는 관계죠.
이=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종종 대학에 간 학생회 선배들이 왔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우리가 회의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곤 했어요. 예를 들면, “어떻게 1학년이 2학년이 낸 의견에 반박하냐”, “너희 어떻게 후배를 관리하느냐”라고 묻죠. 그럴 때 차이점을 느껴요.
나의 세대는
87학번- 카키색 군복·희뿌연 최루탄 떠올라
97학번- 낀세대 혼란 있었지만 한편 즐거워
07학번- 싸이월드 클럽서 이미 대학생활 중
고민의 세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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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18): 이화여대 사회과학부 07학번. 그에게 대학은 “고등학교때까지 편협했던 사고의 틀을 넓혀 학생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10년 뒤엔 행정고시를 거쳐 공무원이 되고 싶다. 풍문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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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입학을 앞두고, 대학 가면 잘 할 수 있을까. 학점을 잘 딸 수 있을까, 이런 불안함이 있어요. 친구들을 보면 대학을 교양이나 지식을 채우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자유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는 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신=저는 고등학교 때 대학에 가면 좋은 차도 갖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당구도 마음껏 치고, 음악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운동하는 선배, 포커치는 선배, 농구하는 선배, 음악하는 선배… 여러 종류의 선배가 있지만 누구도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특히 외환위기 뒤엔 공황 같은 게 있었어요. 드라마의 대학생은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데, 우리 ‘꼬라지’를 보면 그런 게 아니었어요. 20대 중반까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했어요.
최=부끄럽지만, 저는 중년에 이르러서야 사춘기가 왔습니다. 6년 전에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야,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죠. 정작 대학 때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없었어요. 개인적인 성숙 전에 행동을 먼저 했던 것 같아요.
신=우리 세대는 80년대식 지향에 대한 관심도 가지면서, 또 2000년대식 문화적인 향유를 하죠. 어찌보면 80년대와 2000년대 학번 사이에서 낀 세대인데, 한편으로는 즐거운 세대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질적인 성공이나 문화적인, 경제적인 소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몇달 있으면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데,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니까 제가 품었던 막연한 두려움이 많이 해소되어서 좋았아요. 대학에 가서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음악도, 학회도, 공부도, 그리고 연애도.
정리/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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